EU, 사상 첫 女지도부… “60여년 男체제 깨졌다”

입력 2019-07-03 17:22 수정 2019-07-03 17:29
유럽연합(EU) 정상회의는 2일(현지시간) EU 차기 집행위원장 후보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독일 국방장관(왼쪽)을 추천했다. ECB 총재 후보로 프랑스 출신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내정했다. 사진=연합뉴스

여성들이 유럽연합(EU) 핵심 기구인 EU 집행위원회와 유럽중앙은행(ECB)을 이끌게 됐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여성들에겐 수장 자리를 내주지 않았던 곳들이다.

EU 정상회의는 2일(현지시간) EU 차기 집행위원장 후보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독일 국방장관을 추천했다. 또 ECB 총재 후보로 프랑스 출신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내정했다. EU 집행위원장과 ECB총재는 EU 정상회의 의장, 유럽의회 의장, EU 외교·안보 고위대표와 함께 EU의 5대 핵심 보직이다. EU 집행위원장은 EU의 각종 정책 등을 입안하는 행정부 수반 격이고, ECB 총재는 유로존 통화정책을 총괄하는 자리다. 여성이 이 자리에 오른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영국 가디언은 “60년 이상 지속돼온 EU 남성 지도부 체제를 깨뜨렸다”고 평가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EU가 전에 없던 시험대에 오른 중요한 상황에서 두 명의 여성을 가장 중요한 직위에 앉히면서 역사를 썼다”고 전했다.

EU는 정상회의에서 집행위원장을 추천하면 유럽의회가 투표로 이를 승인하도록 규정한다. 폰데어라이엔은 이달 중 유럽의회 인준투표에서 유럽의회 의원 751명 가운데 과반 찬성을 얻으면 오는 11월 1일부터 장클로드 융커 현 집행위원장의 뒤를 이어 집행위원장직을 수행한다. 라가르드는 별도의 절차 없이 같은 날 ECB 총재로 공식 임명된다.

의사이자 경제학도인 폰데어라이엔은 2005년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에 입당했다. 가족청년부 장관, 노동부 장관을 지냈고 2013년 12월에는 독일 최초의 여성 국방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7명의 자녀를 두고 있어 ‘다산의 여왕’으로 불리며 출산장려 정책을 추진해오기도 했다.

라가르드는 ‘여성 최초’로 매번 역사를 써온 인물이다. 고국인 프랑스와 주요 7개국(G7) 최초의 여성 재무장관을 역임했고, 2011년 IMF 최초의 여성 총재로 선출됐다. 2016년에는 첫 IMF 연임 여성 총재가 됐다.

EU를 이끌게 될 두 사람에겐 막중한 임무가 앞에 놓여있다. 폰데어라이엔에게는 브렉시트, 기후 변화, 난민 문제 등 큼지막한 난제를 풀어가야 한다. 특히 강력한 유럽통합파로 분류되는 폰데어라이엔이 어떻게 브렉시트 문제를 풀어갈지 주목된다. 그는 2015년 독일 주간지 디 자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손주들이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에서 살길 바란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애통해하던 폰데어라이엔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는 브렉시트 이행을 감독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법조인 출신인 라가르드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라가르드는 파리 10대학과 액상프로방스정치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변호사로 활동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라가르드는 통화정책을 직접 경험한 적이 없다”며 “ECB가 취약한 인플레이션과 싸우고 유로존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도출해야하는 상황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반면 NYT는 “비록 경제통은 아니지만 거대 국제 로펌에서 반독점법 전문변호사로 일했다”며 “3억4000만여명의 19개국 통화 정책과 주요 경제 결정을 조율하는 데 필요한 강인하고 활기찬 협상력을 가졌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EU 정상들은 EU 정상회의 의장 후임으로는 샤를 미셸 벨기에 총리를, 외교·안보 고위대표에는 호세프 보렐 전 스페인 외교장관을 각각 내정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