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가 4일 시작되면서 직접 타격이 예상되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당장 수출 중단이 아닌 90일 가량의 허가 심사 기간을 두겠다고 밝힌 만큼, 업계는 이 기간 동안 재고 쌓기에 집중하는 동시에 소재 수급 다변화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3일 “당장 규제가 시작돼도 의견청취 기간과 허가 심사 기간을 거친다고 하니 이 기간 동안 재고를 최대한 확보하는 것 외엔 대안이 없다”며 “얼마나 많은 재고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버티느냐가 정해지는 상황이라 경쟁사보다 많은 재고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기업의 생산량과 재고량이 한정된 만큼 우선 확보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기업들은 양국 정부가 ‘강대강’으로 첨예하게 맞서는 상황에서 눈에 띄는 행동을 최대한 자제하는 분위기다. 다른 관계자는 “정부 간의 핑퐁이 오가는 상황이라 예측이 쉽지 않고, 구체적인 규제 품목이나 허가에 소요되는 기간이 명확지 않다”면서 “경각심을 가지고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일본의 이번 조치에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본은 오는 21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아베 총리로선 개헌 추진을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선거다. 보수층의 표 결집을 위해 징용판결 문제를 거론하며 한국을 상대로 강경한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 ‘원상복귀’ 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사태가 길어지면 국내 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둔 일본 기업의 실적 타격으로 이어지면서 자국 정부에 대한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날 재계에서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을 놓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본은 치밀하게 정부 부처 간 공동작업까지 해가며 선택한 작전으로 보복을 해오는 데 우리는 서로 비난하기 바쁘다”며 작심 비판했다.
전문가는 결국 정부가 나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은 “기업은 허가 심사 기간 동안 재고를 총동원하고, 국내 생산을 증가시키는 동시에 중국·대만 업체의 제품을 평가하는 등 최대한 버텨보려 할 것”이라면서 “결국 정치적 이슈인 만큼 이 기간 동안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서 정·경 문제 분리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사태 해결을 위해 일본 경제단체연합회 방문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한·일 관계 악화에 따른 경제활동 둔화에 우려를 제기해온 만큼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여러 검토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