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제소, 일본 막는 브레이크 역할…대화도 하는 ‘투트랙 전략’ 필요

입력 2019-07-03 17:15 수정 2019-07-03 17:35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행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와 관련해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준비에 본격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WTO 제소는 일본의 추가 경제 보복조치에 브레이크를 일단 걸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전문가들은 WTO 제소와 함께 경제 보복조치의 원인인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를 위해 외교 당국이 적극 나서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통상 당국자는 3일 “일본의 조치가 WTO에서 엄격히 금지하는 수출통제에 해당한다고 보고 본격적인 법률검토에 들어갔다”며 “담당부서에서 실무적인 작업에 이미 착수했다”고 밝혔다. 일본은 지난 1일 강제징용 배상판결 관련 불만으로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핵심 재료에 대한 수출 규제를 공식화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일본의 반도체 제조 핵심 재료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 조치와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이라며 “자유무역을 천명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합의를 무색하게 만든 모순적 행동으로, 민관 공동대책 수립 등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WTO 제소가 현실화된다면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라는 외교적 사안이 한·일 간 통상전쟁으로 확대되는 모양새가 된다. 그렇지만 WTO 제소는 우리 정부의 강경한 입장을 전하는 수단인 동시에 일본의 추가적인 경제 보복조치를 막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이날 “일본 측은 전선을 확대하려고 하는데 우리 측이 WTO 제소를 해서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도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에 대한 일본의 경제 보복조치가 심화된다면 맞대응은 당연히 필요하다”며 “WTO 제소는 의미가 있는 조치”라고 말했다.

강경화(왼쪽) 외교부 장관이 지난해 8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 싱가포르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양자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전문가들은 수출통제 등 일본의 경제 보복조치엔 맞대응 하면서도 한·일 간 갈등의 원인인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를 위한 외교적 노력은 이어가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달 19일 한·일 양국 기업이 낸 출연금으로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해법을 내놓았다. 하지만 일본 측은 즉각 이 같은 방안을 거부했다. 진정성 있는 보완을 통해 일본 측을 설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양 교수는 “외교부는 일본 외무성 하고 접촉을 해서 제시한 방안에 플러스알파(+α)를 만들어야 한다”며 “한국 정부가 한·일 기업들한테만 문제를 내던지고 뒤로 빠지는 거 아니냐는 불신을 일본이 가졌는데 이를 불식시킬 수 있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가 민사소송 성격이라 개별 배상 후에도 추가 소송이 이어질 수 있어 일본 정부는 이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배상 범위, 배상 금액, 추가 소송에 입법 대책 등을 우리 정부가 먼저 국내적으로 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 교수는 “피해자 규모 등에 대해 예측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지금 좀 불명확하다”며 “우리 안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 없이 협상만 하자고 하니 일본이 진정성을 못 느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다방면으로 정부가 관련 이해 당사자들을 조율하고, 동시에 일본엔 협상을 제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일본에 진정성 있는 협상을 제안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무게감 있는 지일파 인사를 특사로 파견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다. 외교부와 외무성 간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특사외교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