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북핵 실무협상 책임자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의 완전한 동결을 원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비건 대표의 발언이 미국이 그리는 북한 비핵화의 최종 단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해석된다.
비건 대표는 지난달 30일 한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전용기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바라는 것은 WMD 프로그램의 완전한 동결”이라고 말했다고 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가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는 비보도를 전제로 한 기내간담회에서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면서 “동결과 비핵화 최종상태의 개념, 그리고 그 안에서 북한의 핵무기 포기를 향한 로드맵을 논의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최근 북·미 양측의 ‘유연한 접근’을 강조한 비건 대표는 비핵화 협상 과정에 일부 타협(give and take)의 여지가 있음을 수차례 시사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비핵화 전에는 제재 완화에 관심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 인도주의적 지원과 인적교류 확대, 평양과 워싱턴의 연락사무소 설치 가능성 등을 언급했다.
비건 대표의 발언은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함에 있어 WMD 프로그램의 완전한 동결과 북·미 관계개선 조치를 교환하면서 협상을 단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의사로 해석된다. 이는 북한이 그동안 미국에 요구했던 동시적단계적 행동 원칙을 일부 수용하겠다는 의사로 읽힌다.
다만 WMD의 동결이 미국 정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앞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1일(현지시간) ‘미 정부 내에서 북한 핵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려는 핵동결론이 논의되고 있다’는 뉴욕타임스(NTY) 보도에 “핵동결에 대해 논의한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비건 대표 역시 “완전한 추측”이라고 일축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우리 정부의 입장은 분명히 완전한 비핵화”라며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비건 대표가 언급한 WMD 동결의 범주에 핵물질까지 포함되고, 동시단계적 협상의 초기 차원이라면 수긍할만한 제안”이라며 “미국이 ‘선(先) 비핵화라는 볼턴식 해법보다는 확실히 유연해 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도 “비건 대표의 말은 인도적 지원만으로 동결을 이끌어내겠다는 의미인데, 제재 완화를 포함하지 않은 개념이라 북·미가 이 정도로 급물살을 타는 것은 좋은 일”이라면서도 “다만 북한이 이에 만족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