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허투루 보고 넘길 만한 책이었다. 요즘 서점가에 차고 넘치는 들큼한 에세이일 거라고, 그렇고 그런 신간일 거라고 생각했다. 저자도 난생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한데 출판사 대표가 신간과 동봉해 취재진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니 호기심이 동했다.
“신간 발행과 관련하여 담당 기자분들께 메일을 쓰기는 처음입니다. …(이 책은) 달팽이처럼 느리게, 한없이 가난하게 살다간 어느 자유인이 남긴 글입니다. 잡지사 기자 시절부터 당대 최고의 산문가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만 과연 그런지 한번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실제로 책장 곳곳에는 반짝이는 글들이 간단없이 펼쳐져 있었다. 저마다 다른 빛깔을 띤 차돌처럼 단단하고 아름다운 산문이었다. 객쩍은 이야기도 옹색하지 않게 풀어내는 솜씨가 느껴졌고, 포장하지 않은 날것의 느낌도 한가득 묻어났다. 아마도 이 책을 마주할 독자들 역시 비슷한 감흥을 느끼면서 자주 멈춰 서서 자간과 행간 사이를 서성이게 될 것이다.
문장에 새긴 가난과 자연
책을 펴낸 김인선은 1958년생으로 세는나이로 예순 하나이던 지난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젊은 시절엔 잡지사 몇 군데를 다니며 밥벌이를 했다. 클래식 애호가였고 도스토예프스키와 랭보를 좋아했다. 한때는 새에 빠져 새소리 연구사전을 펴내겠노라 다짐한 괴짜이기도 했다.
책의 끄트머리에 실린 친구 김대현씨의 회고담을 보면 저자에게 글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었다.” 그는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거나 필명을 날릴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동시대 작가들의 졸렬한 세계관과 형편없는 글솜씨를 비난하곤” 했다. 스스로 자신의 문장에 자신감이 가득했던 셈이다. 그가 “욕하지 않는 작가”는 시인 백석이 유일했다.
저자의 생애는 신산했다. 자세한 사정을 알 순 없지만 “마흔이 넘어 집안이 쫄딱 망한 이후 경기도 산자락 마을”에 둥지를 틀었고, 번역 일을 하면서 근근이 삶을 버텨냈다.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한 그에게 비루한 가난은 벗어나기 힘든 굴레였다. 하지만 막다른 가난의 길에서 그는 새로운 것들을 만나게 된다.
“십몇 년 전에 집이 쫄딱 망해서 산기슭 농장 옆 축사 같은 곳에서 3년을 살았다. 불편하고 괴로운 생활이었지만, 자연과 동식물에 내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던 게 그곳 생활을 통해서였다. 돌이켜보면 고맙고 귀한 세월이다.”
책을 펼치면 나무와 꽃과 동물을 향한 살뜰한 애정이 느껴지는 글이 차례로 등장한다. 자책과 위악이 곳곳에 아픈 얼룩을 남겨놓았지만, 살아있는 것을 예찬하며 달팽이처럼 느리게 문장을 밀고 나간 흔적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생명을 떠받든 저자의 성정을 느끼게 된다.
‘꽃을 꺾지 못했다’ 같은 글이 대표적이다. 저자의 어머니는 나물철이 되면 “노루처럼 온 산을 쑤시고 다니는 양반”인데 다리가 아파서 대문 밖 나들이가 힘들어졌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무시로 묻곤 했다. 산에 무슨 꽃이 피었냐고, 오늘은 무슨 꽃을 밖에서 보았냐고.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길마다 산동백이 피었더라고 말하니 어머니는 “좀 꺾어 와라”고 한다. 하지만 “한 해를 기다렸다가 며칠 몇 주 살자고 나온 놈을 잠깐 꺾어버리는 게 찝찝”해서 아들은 동백 앞에 서서 망설이고 또 망설인다. 마음을 다잡고 꽃의 팔모자지를 비트는데 이내 힘이 빠져버리고 만다. 별것 아닌 이야기지만, 가슴을 콕 찌르는 뭔가가 느껴지는 글이다.
2006년 경기도 북부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든 폭우를 다룬 ‘홍수’도 인상적이다. 개울이 범람하면서 동네는 풍비박산이 났는데, 저 멀리 철장에서는 누렁이가 울부짖고 있었다. 누렁이는 저자의 눈을 쳐다보면서 철장을 열어 달라고 울고 또 우는데 폭우 탓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비가 그치고 난 뒤에야 저자는 철장 근처로 다가갔다. 비좁은 철장에 개를 가두어놓은 주인을, 개를 가둬놓고 잊어버린 그 인간을 저주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철장엔 누렁이가 없었다. 누가 문을 열어줬거나 누렁이 스스로 문을 열고 탈출했을 가능성은 아예 없었다.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곱씹다가 그는 결국 이런 결론을 내린다.
“그 좁은 철장 안에 비밀통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그 비밀통로는 철장 안에서 철장 밖으로 난 것이 아니라, 철장 안에서 아예 이승 바깥으로 나가는 통로다. 평생을 그 좁은 철장에 갇혀 산 누렁이는 당연히 그런 통로에 대해 오래 연구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마지막 절체절명의 순간 마침내 그 통로를 발견했던 것은 아닐까.”
한국어의 아름다움
책에는 모두 93편의 글이 실려 있다. 일상의 희로애락을 담은 그윽한 에세이가 가지런하게 펼쳐지는데 드문드문 독특한 분위기를 띤 이야기도 등장한다. 저자가 ‘괴담’이라고 이름붙인 기묘한 이야기들이다. 저자는 한때 ‘금오신화’를 염두에 두고 괴담집을 준비했다고 한다.
확실한 건 어떤 글에서든 한국어의 아름다움이 진하게 묻어난다는 점이다. 품이 넓은 강물처럼 유장하게 흘러가는 문장에는 특유의 리듬감이 배어 있다. 요즘 젊은 작가들 글에서는 느끼기 힘든 부분이다. 가령 ‘호박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라는 글을 보자.
“요즘은 눈길 닿는 곳마다 호박이다. 텃밭 귀퉁이마다 옹기종기 덤불을 이룬 놈들, 대추나마 꼭대기까지 기어오른 놈들, 보리밥 먹은 머슴 방귀 뀌듯 노란 꽃을 뽕뽕 피워 올리며 지붕을 한가득 덮은 놈들. …호박을 볼 적마다, 저렇게 푸근하고 넉살좋게 사는 것 좀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생각만 그렇지 실제 사는 속내는 오두방정도 요런 오두방정이 없다.”
저마다 대단한 개성을 자랑하는 글들이지만 으뜸은 아버지의 죽음을 다룬 ‘아버지의 임종’일 듯하다. 빼어난 단편 소설처럼 여겨질 정도로 군더더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야기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회상하면서 시작한다. 그는 어머니 장례를 기독교장으로 치른 뒤 “향후 교회장 절대불가” 방침을 세웠다. 어머니 빈소에는 주야장천 찬송가와 복음성가가 울려 펴졌는데 그게 마뜩잖았다. 어머니는 크리스천이긴 했지만 애청곡은 “불가의 훈계를 청승맞은 가락으로 구수하게 버무린” 김영임의 ‘회심곡’이었다. 마지막 가는 길에 ‘회심곡’을 들려드리고 싶었지만 교인들 눈치가 보여서 그럴 수 없었다. 그게 한이 돼서 저자는 언젠가 치르게 될 아버지 장례만큼은 기독교장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6년이 흘러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온 전도사는 간절하고 열렬하게 기도하고 찬양했다. 저자는 “외경과 역겨움을 동시에 느꼈다”고, “그 과장된 억양과 상투적인 운율이 귀에 거슬렸지만 그 소리가 이승의 벼랑 끝에 선 아버지에게 가 닿기를 바랐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글은 존재론적 이야기로 뻗어나간다. “소멸의 순간, 나는 내가 믿지 않는 것을 거부하고 끝까지 절망과 허무를 혼자 힘으로 통과할 수 있을까? 지푸라기를 잡지 않고 그냥 물속으로 가라앉을 수 있을까? 나는 죽음보다 죽음에 굴복하는 나 자신이 더 두려웠다. …나는 전도사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전도사의 말을 믿기를 바랐다.”
베스트셀러 정상에 오르내리는 알록달록한 에세이들 사이에서 이 책은 묻혀버릴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의 한국어 산문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저자를 “당대 최고의 산문가”라고 치켜세우긴 힘들 수 있지만 일급의 문장가라는 사실만은 부정하기 힘들 것 같다. 김인선은 너무 늦게 우리 곁에 찾아온 글쟁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