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에피톤 프로젝트·심규선, ‘마스터권’ 무단 매각한 前소속사에 승소

입력 2019-07-03 11:00
차세정(에피톤 프로젝트)·심규선(루시아)씨. 인터파크 제공

인디음악계의 ‘SM엔터테인먼트’로 불렸던 연예기획사 파스텔뮤직(대표 이응민)이 가수들 몰래 ‘마스터권(마스터 원본에 대한 소유권)’을 무단으로 대량 매각한 사실이 과거 소속가수들과의 법정 다툼에서 드러났다. 파스텔뮤직은 ‘마스터권 무단 양도’ 사태로 소속 가수 대부분이 계약을 해지해 현재 사실상 폐업 상태다.

마스터권은 ‘마스터’(원반)를 만든 음반제작자(가수, 기획사 포함)가 방송·공연·스트리밍 등으로 수익을 얻을 권리를 의미한다. 음악계 일각에서는 마스터권을 기획사의 전유물로 여기는 인식이 있어왔다. 파스텔뮤직처럼 기획사가 마스터권을 임의로 제3자에게 양도할 경우 가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법원이 파스텔뮤직에게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 이 같은 인식에 경종을 울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3부(부장판사 김선희)는 파스텔뮤직 이응민 대표가 과거 소속가수였던 ‘에피톤 프로젝트’의 차세정(35)씨, ‘루시아’로 활동 중인 심규선(33)씨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고 3일 밝혔다. 이 대표는 차씨 등과 2016년 계약을 해지하면서 마스터권 수익을 포함한 정산금 10억원을 지급했다. 1년 뒤 갑자기 태도를 바꿔 협박으로 정산금을 갈취당한 것이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이 대표가 협박을 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수들 몰래 마스터권 판매 수익을 얻으려 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대표는 2016년 11월 경영난으로 인해 소속 가수들의 음원 1688곡(전체 보유 음원의 약 80%)에 대한 마스터권을 약 32억원에 음악서비스회사 NHN벅스(당시 벅스뮤직)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양도계약 교섭 사실을 차씨 등에게 비밀로 했다”며 “뒤늦게 이를 안 차씨 등이 다소 급박하게 계약해지 및 정산금 지급을 요구했지만 이를 협박이라 속단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특히 재판부는 “마스터권은 회사의 고유권리이기 때문에 양도에 문제가 없었다”는 이 대표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음반을 스스로 녹음했던 점, 전속계약서 상 원고 역할이 피고가 제작한 마스터를 디자인·인쇄 및 발매하는 것에 국한된 점을 고려하면 마스터권의 소유자가 누군지 분쟁의 소지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며 “해지 정산금으로 지급한 10억원이 과도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심씨는 재판 과정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이 대표에게) 마스터권을 파는 게 정말인지, 그것을 물러주시면 안 되겠는지 울면서 사정했다”며 “저희는 완벽한 을의 입장이었다”고 토로했다.

재판부는 또 이 대표의 마스터권 무단 양도가 소속 가수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마스터권 양도 계약에 따라 모든 마스터 권리를 벅스에게 영구적으로 양도하게 되면 피고들은 추후 전속계약에 따른 정산금을 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실제 파스텔뮤직 소속 가수들은 마스터권 양도 계약을 뒤늦게 안 뒤 대부분 전속계약을 해지했지만 정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피고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채율의 정다은 변호사는 “직접 작사·작곡·녹음을 하는 인디가수들의 경우 마스터권을 기획사의 권리로 단정할 수 없고 분쟁의 소지가 있다고 인정한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밝혔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