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속에서 취업공부를 하기 위해 에어컨을 구매하는 것은 구직활동으로 볼 수 있을까. 충치를 치료하는 것은? 문신 없애는 것은? 그도 아니면 옷이나 닌텐도를 사는 것은?
고용노동부가 지난 4월부터 저소득 청년들의 취업준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급하고 있는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의 용처를 둘러싸고 논란이 불붙었다. 국민일보가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인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청년구직활동지원금 5월 세부 사용 내역’ 1078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청년들은 지원금으로 에어컨이나 게임기를 구매하고 충치 치료에 지원금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원금이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된 이유는 제도 자체가 네거티브 방식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고용부는 지원대상으로 선정된 취업준비생에게 매월 50만원씩 6개월간 300만원을 구직지원금 전용 클린카드(체크카드)로 지급한다. 이 카드는 사용제한업종(호텔, 복권판매, 유흥주점, 골프, 면세점 등)에만 해당하지 않으면 제한 없이 어디서든 쓸 수 있다.
반응은 양분됐다. “세금이 ‘눈먼 돈’처럼 쓰였다”는 비판과 함께 “청년 복지제도인데 뭐가 문제냐”는 반박도 나왔다. 국민일보는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의 용처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20대 취업준비생 15명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은 생활비 아니다”
보도가 나온 뒤 네티즌 반응은 정확하게 양분됐다. 한편에서는 “게임기 구매가 무슨 구직활동이냐”는 비판이 쏟아진 반면, 다른 편에서는 “구직활동을 하는 동안 청년에게도 일상을 살 권리가 있다”는 반박이 나왔다. 돈을 받을 자격이 되는 취준생들의 반응도 네티즌들처럼 정확하게 양극단으로 나뉘었다.
국민일보가 취재한 취준생 15명 중 8명은 “지원금을 생활비처럼 사용한 것은 제도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대신 구직활동의 범위를 엄격하게 한정하고 카드의 사용처도 도서구매, 학원비 등으로 엄격하게 제한하는 ‘포지티브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졸업을 앞두고 보험계리사를 준비하고 있는 손주희(25)씨는 “청년 대부분이 지원금을 취지에 맞게 사용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게임기, 충치 치료 등 일부 내역은 취업준비에 직접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학원비, 스터디룸 대여, 면접 관련 복장 준비 비용, 교통비 정도로 사용처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취지에 맞지 않게 사용되는 지원금을 어떻게 본래 취지에 맞게 쓰게 할 것인지, 어떻게 모니터링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서 정책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학생 김유경(24)씨도 “네거티브 방식으로 지원금을 지급하다보니 게임기 구매 등과 같이 구직활동과 관련 없는 물품도 구매하게 되는 것”이라며 “취업준비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곳에서만 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항목을 나눠서 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취준생 박진홍(28)씨는 “사용처를 특정 구직활동에 필요한 분야로 제한하기보다는 일정 비율을 정해두고 지원금의 50%는 생활비로, 나머지 50%는 학원비나 교통비 등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지원금을 사후에 지급하는 방식이 효율적이라는 제안도 나왔다. 인천에 사는 대학생 강민수(23)씨는 “돈을 미리 주고 ‘필요한 곳에 알아서 써라’라는 식의 지급보다는 기준에 적합한 사용처에 쓰고 영수증을 제출해 돈을 지급받는 형식이 더 효과적일 것 같다”고 말했다.
취준생 황인중(27)씨는 “지원금이 목적에 맞게 사용될 수 있도록 환수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며 “만일 지원금이 구직활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곳에 쓰였다면 지원금을 회수하거나 다른 제도를 통해 불이익을 주는 식으로 운영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은 사회안전망…생활비로 써도 된다”
반면 취준생 15명 중 7명은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이 저소득층 청년을 위한 일종의 복지제도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생계 때문에 취업준비에 몰두하기 어려운 청년들에게 주는 지원금인만큼 일정액이 생계 유지에 사용되는 것을 문제 삼기는 어렵다는 주장이었다.
현행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신청조건은 ▲미취업자 가운데 졸업 또는 중퇴 이후 2년이 지나지 않은 만 18~34세 ▲기준중위소득 120% 이하(4인 가구 기준 약 553만원) ▲주 근로시간 20시간 이하다. 저소득층 청년의 취업활동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제도는 설계돼있다.
대학생 4학년 강한들(25)씨는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이 ‘청년수당’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강씨는 “이 제도는 사회안전망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지원금을 지급하는 조건이 중위소득 120% 이하 청년 아닌가”라고 반문한 뒤 “취업 준비와 상관있나라는 질문에만 집착하면 제도가 도입된 큰 맥락을 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구직활동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과 불안을 경감시키고 구직자를 돕는데 제도를 도입한 목적이 있다”며 “지원금이 불안한 청년들에게 창의적인 생각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준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경기 의정부에 사는 대학생 최재혁(25)씨도 “지원금을 받는 사람들이 소득 수준이 낮은 청년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생활비 명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용인해 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생계비와 구직활동비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고려됐다. 안암에 거주하고 있는 오모(24)씨는 “취업 준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정확히 답을 할 수가 없다. 또 구직과 관련 있거나, 없는 분야를 나누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취업준비를 정의하려면 역량 계발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기준을 세워야 한다. 도대체 그 기준은 어떻게 정하나”라고 비판했다.
대학생 4학년 김준혁(25)씨도 “구직과 100% 관련있거나 없는 분야가 존재할지 의문이다. 예를 들어 학원 안 다니고 공부하는 사람도 있다”며 “충치 때문에 학습에 지장이 생기면 충치 치료를 하는 것도 구직활동 아닌가. 일상과 구직활동을 완벽하게 분리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솔직히 취업준비과정에서 드는 다양한 비용 및 어려움에 대해 기성세대는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기타 의견들…고용부의 직무유기
일부 취준생들은 고용부의 관리 부실을 지적했다. 사용처를 모르는 금액이 너무 많다는 비판이다. 동탄에 거주하고 있는 남지윤(26)씨는 “현실적으로 너무 적은 돈까지 확인하기는 힘들 것 같다”면서도 “모니터링할 지원금을 현행 30만원 이상에서 10만원 이상으로 조정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지난 4월 청년수당으로 1만2159명에게 총 60억원을 지급했다. 그런데 사용 내용이 증명된 지원금은 4억원이었다. 고용노동부가 30만원 이하 지원금 사용 내용을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용노동부는 30만원 이하 지원금 사용을 모니터링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답변했다.
청년구직활동지원금대상 조건인 중위소득 120%가 너무 높다는 주장도 있었다. 대학교 4학년 전모(25)씨는 “저 돈 받아서 닌텐도 사고 한약지어 먹을 정도면 전혀 지원금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받고있는 것 같다. 이러니까 포퓰리즘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며 “지원대상을 기초생활 수급자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태현, 박준규 인턴기자, 그래픽=김희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