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여성에게 “브렉시트 되면 사라져야”…英70대 처벌

입력 2019-07-02 18:34
브렉시트 찬성시위.

영국의 한 70대 남성이 흑인 여성 점원을 향해 “브렉시트가 되면 이 곳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가 600파운드(약 90만원)의 벌금을 물게 됐다. 1년간의 사회봉사 명령과 10주간의 야간 통행금지도 함께 부과됐다.

브렉시트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말한다. 영국은 지난 2016년 이민자 문제로 국내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늘자 2016년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브렉시트를 결정했다. EU 탈퇴 시 자체적으로 이민자 유입 규제를 강화할 수 있다. 영국 내에서는 브렉시트 이후 인종차별적인 외국인 혐오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영국 인디펜던트와 BBC 등은 1일(현지시간) 연금생활자인 존 키오(74)가 인종 차별 문제와 관련해 공공질서를 심각히 훼손한 혐의가 인정돼 벌금형에 처해졌다고 보도했다.

키오는 지난해 8월 30일 런던 남부 페컴에 위치한 마권판매소에서 200파운드(약 20만원)의 당첨금을 찾으려다가 흑인 여직원인 아네카 데이비스와 다툼을 벌였다. 검찰에 따르면 키오는 데이비스가 당첨금 200파운드를 자신의 손이 아닌 계산대에 올려놨다는 이유로 격분해 폭언을 퍼부었다. 그는 흑인 비하성 욕설과 함께 주먹을 들어오려 보이며 데이비스를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데이비스는 재판에서 그 사건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고 5일이나 일을 쉴 수 밖에 없었다고 호소했다. 그는 “난 이 나라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왔지만 흑인으로 태어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브렉시트과 관계된 모든 일들 때문에 내가 영국사회에서 환영받는 존재인지 의심을 갖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키오의 변호인은 키오가 자동차 사고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고 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판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학대의 두려움 없이 일터로 갈 수 있어야 한다”며 이번 사건이 젊은 흑인 여성에게 사건 그 자체보다도 더 큰 충격을 줬다고 강조했다. 사건 담당 검찰 관계자는 “혐오 범죄는 우리 사회를 부식시킨다”며 “이번 판결이 피해자뿐만 아니라 그의 동료에게 정의가 실현된다는 믿음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