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이 경찰 잡나…’ 윤석열 청문회 나올 한국당 의원, 전원이 피고발인

입력 2019-07-03 06:00 수정 2019-07-03 06:00
23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고등법원 6층 회의실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광주고등·지방·가정·대전고등·지방·가정법원·제주지방법원·전주지방법원·특허법원 등에 국정감 사가 열린 가운데 자유한국당 주광덕 의원이 자료요청을 하고 있다. 2018.10.23.

‘윤석열 청문회’에 참여할 자유한국당 의원 전원이 피고발인 신분인 것으로 2일 확인됐다. 이들은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대상 안건)’ 지정 과정에서 불거진 몸싸움 등으로 검·경의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법조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피고발인 신분으로 검찰 수장의 청문회에 나서는 데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도둑이 경찰 잡는 격’이라는 지적이다.

2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에 나설 한국당 소속 국회 법제사법위원(법사위원) 6명 모두 피고발인 신분으로 나타났다. 여상규 법사위원장, 김도읍, 정갑윤, 이은재, 장제원, 주광덕 위원이다. 한국당은 검찰 출신인 정점식 의원을 법사위로 보임시켜 윤 후보자 청문회에 참여케 하겠다고 했는데, 정 의원도 피고발인 신분이다.

이들은 모두 지난 4월 국회에서 선거·개혁법안 패스트트랙 지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몸싸움 사건 등에 연루돼 있다. 여상규 위원장과 정갑윤 위원은 지난 4월 25일 사법개혁특별위원회 회의 참석을 막기 위해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을 채 의원실에 ‘감금’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이 사건과 관련해 여 위원장과 정 위원 등 한국당 의원 4명에게 오는 4일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이은재 위원은 더불어민주당이 패스트트랙 법안을 팩스를 통해 제출하자 국회 의안과 사무실에서 이 법안 문서를 빼앗는 등 물리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민주당 등에 의해 고발됐다. 김도읍, 장제원, 주광덕 위원, 정점식 의원도 의안과 사무실 점거, 사개특위 회의장 앞 충돌 상황 등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고발 당한 상태다. 고발장은 검찰에 접수됐는데, 검찰은 일단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사건을 영등포경찰서에 내려 보낸 뒤 수사 지휘를 하고 있다.

한국당은 8일 예정된 청문회에서 윤 후보자를 철저히 검증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소속 법사위원 전원이 피고발인 신분인 탓에 청문회가 제대로 진행되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 야권 관계자는 “윤 후보자를 상대로 공세를 펴자니 수사를 받는 입장에서 불안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야권 관계자는 “한국당은 윤 후보자를 문재인정부의 ‘코드 인사’라고 본다”며 “윤 후보자가 총장이 되면 수사 선상에 오른 야당 법사위원 본인의 신분이 위태로울 수 있어 더 강한 공세를 펼 것”이라고 내다봤다. 개별 법사위원들이 후보자 검증보다는 위원 본인의 이해 득실을 따져 청문회에 임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실제 패스트트랙 몸싸움 사건에는 ‘국회선진화법’이 적용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 법은 처벌 조항이 강하다. 국회선진화법에는 국회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 또는 그 부근에서 폭행·감금 등을 한 경우 징역 5년 이하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있다. 또 이 법은 폭행·감금 과정에서 사람이 다치거나 서류 등이 손상되면 7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통상 형법을 어긴 경우 피선거권이 박탈되려면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 받아야 한다. 그러나 국회선진화법 위반의 경우 벌금 5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한국당 법사위원 일부는 ‘사법농단 의혹’ 사건 수사 선상에도 올라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2016년 8월 한국당 소속 법사위원으로부터 이군현·노철래 전 한국당 의원의 재판을 선처해달라는 청탁을 받은 혐의 등으로 현재 재판 중이다. 임 전 차장은 당시 누구로부터 재판 청탁을 받았는지에 대해 아직까지 함구하고 있다. 2016년 8월 한국당 소속 법사위원이었던 이들 중 여상규 위원장, 정갑윤, 주광덕 위원은 현재도 법사위원이다. 한 야당 관계자는 “재판 과정에서 임 전 차장에게 청탁을 한 법사위원이 누군지 밝혀질 수도 있다”며 “청탁자가 한 둘이 아닐 수 있어 총선을 앞두고 한국당에 악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청탁자로 지목된 의원은 아마도 내년 총선 공천 경쟁에서 뒤처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민주당·바른미래당 소속 일부 법사위원도 패스트트랙 사태와 관련한 피고발인 신분이다. 민주당은 송기헌, 백혜련, 표창원, 박주민 위원, 바른미래당은 오신환 위원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다만 이들은 대부분 폭행 등 특수상해 등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국회선진화법과 달리 특수상해 혐의의 경우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야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 한국당 위원들에 비하면 상황이 나은 셈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기소권을 쥐고 있는 검찰 수장의 청문회를 앞두고 법사위원 전체 17명 중 11명이 수사 선상에 오른 상황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정치권 원로는 “수사에 자유로운 의원들을 중심으로 법사위를 다시 꾸려 청문회에 임하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였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사 받는 법사위원이 청문회에서 하는 말에 진정성이 담보되겠느냐”며 “국민들 눈에는 도둑들이 경찰 잡겠다고 나선 것으로 밖에 안 보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