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범죄인 인도 법안(일명 송환법)’ 문제로 촉발된 홍콩 시위로 정치적 시험대에 올랐다. 시 주석의 전제적 통치 방식에 대한 중화권 국가들의 불만이 홍콩 시위를 고리로 분출되고 있다는 평가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일(현지시간) 홍콩에서 확산되고 있는 대규모 시위가 시 주석의 독재 통치에 대한 중대한 정치적 도전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 주석은 지금까지 홍콩의 소요에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는 등 일정 거리를 유지해왔다. 가디언은 거리의 폭동과 결합돼 날로 커지고 있는 홍콩 시위의 규모와 그 지속성을 고려했을 때 시 주석이 더이상 방관자 역할에 머무르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콩 시위가 시 주석의 사태 개입을 압박하고 있으며, 그가 나서지 않을 경우 ‘스트롱맨’ 이미지가 훼손될 수 있어 딜레마에 빠졌다는 것이다.
홍콩 정부는 앞서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지 않은 중국 본토와 대만 등의 국가 및 지역으로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송환법을 추진하다 시민들의 거센 반발을 사자 이를 무기한 연기했다. 하지만 송환법 보류에도 시위가 사그라들지 않자 중국 정부 당국은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홍콩 주권 반환 22주기를 맞은 지난 1일에도 홍콩 시민 수십만명은 송환법 완전 폐기, 캐리 람 행정장관의 사퇴를 주장하며 대규모 시위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시위대가 물리력을 동원해 의사당을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이번 홍콩 시위가 표면상으로는 송환법 저지에 목적을 두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시 주석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불만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콩의 자유에 대한 중국 본토의 억압, 민주적 권리의 결여, 시 주석의 전제 통치가 초래한 위협적 분위기가 홍콩 시위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넓게는 언론과 인터넷에 대한 검열 강화, 소수 민족과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박해 등 정치적 다원주의 약화 사례들이 포함된다. 지난 2012년 집권한 시 주석은 ‘시황제’에 비견될 정도로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 이래 가장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시 주석의 권력 강화에 비례해 중화권 내 민주주의의 도전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가디언은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인용하며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홍콩의 위기가 심화될 경우 중국의 지도자들이 30년 전 톈안먼 광장에서 그랬듯이 폭력 진압에 나설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톈안먼 사태는 중국 공산당 정권이 1989년 6월 4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해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상이 높아진 현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쉽사리 진압에 나서지는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국제사회의 비난의 폭풍을 피하기 어렵고, 중국의 확장된 경제력과 국제적 영향력에도 심각한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톈안먼 사태는 언론 보도를 막는 철저한 어둠 속에서 벌어졌지만, 인터넷 등 미디어 환경이 전세계 범위로 확대된 상황에서 더이상 대량 학살을 숨기기 어려워 쉽사리 진압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