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화병이 배구공이네…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를 갖고 놀다

입력 2019-07-02 15:47
꽃병에 이보다 더 흐드러지게 꽃을 꽂을 순 없을 것 같다. 집안에 하나 걸어두고 싶은 전형적인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 스타일이다. 자세히 보면 동그란 화병이 농구공 이거나 배구공이라 웃음 코드가 숨어 있다. 우리나라 고려 시대 상감청자 매병이 등장한 것도 있다. 그렇게 동양과 서양이, 과거와 현대가 만나는 그림이다.
화병이 배구공 모양인 정물화.

김성윤(34) 작가가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 ‘어레인지먼트(Arrangement)'전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연구 끝에 ‘화가가 꽃을 꽂는 세 가지 방법’이라는 큰 틀 아래 서양미술사를 비튼 3가지 연작을 내놓았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등장했던 장르인 정물화를 한국적이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구글 꽃꽂이’가 그 하나다. 네덜란드 꽃 그림의 대가 얀 브뤼헐과 얀 반 허위섬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이 연작에는 개화 시기가 다른 꽃이 한 화병에 꽂혀 있기도 하고, 구글에서 얻은, 실제는 없는 꽃 이미지를 슬쩍 끼워 넣기도 한다.

‘마네의 꽃그림’ 연작은 ‘인상주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두아르 마네를 오마주한 작업이다. 원작에 대한 해석이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마네가 말년에 병상에서 그린 꽃그림 16점을 흑백으로 재현했는데, 노화가가 병상에 느낀 생에 대한 쓸쓸함이 흑백의 톤에서 진하게 묻어난다.

식료품 유리 용기를 꽃병으로 활용한 ‘로고 연작’은 토마토 소스병 등 상업 용기를 다 쓰고 버리기 아까워 꽃병으로 쓰는 아내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정물화 바깥 액자 프레임에 상업적 로고를 얹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꽃그림의 전형적인 느낌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로고가 갖는 상업적인 느낌을 동시에 취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액자 그 자체를 작품의 부분으로 활용하는 감각이 돋보인다.

작가는 국민대 예술대학 회화과 출신으로 30대 초반임에도 회화성이 뛰어나 갤러리현대에서 이번이 4번째 개인전이다. 28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