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와 한국탱크협동조합이 ‘붉은 수돗물 사태’의 원인을 놓고 충돌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달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수도관에서 붉은 수돗물이 나오자 저수조(물탱크)를 모두 없애는 방안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이에 조합은 “붉은 수돗물은 물탱크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반발했다.
조합은 2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붉은 수돗물의 원인은 급작스러운 수계 전환 및 낡은 배관”이라며 “오히려 물탱크는 불순물을 침전시켜 정화 기능을 하며, 수도시설 중 유일하게 6개월에 1회 이상 청소가 의무화돼 있다. 이는 서울시 조례로도 규정된 내용”이라고 밝혔다. 특정 구역에 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이 단수되면 다른 정수장에서 물을 끌어오는데 이때 물이 역방향으로 흐르면서 노후 수도관의 녹과 물때를 벗겨내는 것이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물탱크를 아예 없애는 방안에 대해서는 “평상시엔 가능할지 모르지만, 비상시엔 정말 큰 일이 날 수 있다”며 “평시에도 사용량이나 수압 차이로 수시로 수계 전환이 이뤄지는 만큼 붉은 물 사태가 오히려 더 자주 일어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조합은 오히려 물탱크 용량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탱크는 전쟁이나 테러, 지진, 가뭄, 장마 등 비상사태에 사용할 물을 저장한다. 그런데 공동주택의 비상급수 저수조 용량 기준은 1991년 가구당 3t에서 최근에는 가구당 0.5t까지 줄어들었다. 조합은 “현재 가구당 1일 물 사용량 0.92t에 비해 매우 부족한 수량”이라며 “최소한 1.5~2일분인 가구당 1.5t 이상으로 관련 규정이 환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탱크 업체에 공동주택 저수조 말고 다른 판로는 없다. 서울시가 저수조를 없애면 다른 지역에서도 이를 따르게 돼 결국 100여개에 달하는 물탱크 관련 업체들이 줄줄이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큰 상황이다. 조합 관계자는 “업체 관계자들이 모여 이번 일에 대해 불안을 토로했다”면서 “이참에 물탱크 용량 규정도 환원시켜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지난달 21일 붉은 수돗물이 나온 문래동을 방문해 “물은 저장하면 썩는 만큼 조속한 시일 내에 저수조를 모두 없애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서울시는 이후 민관합동 조사단을 꾸려 붉은 수돗물 사태의 원인이 노후 배수관에 있다고 정정했다. 이어 추경 예산 727억원을 들여 문래동의 노후 상수관을 교체하기로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당시 박 시장이 보고를 잘못 받았든지 깊은 내용을 모르고 말씀하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