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26)이 재판에 넘겨지면서 잔인했던 범행 전모가 드러났다. 검찰은 고유정이 저녁에 준비한 카레라이스에 수면제의 일종인 ‘졸피뎀’을 넣어 전 남편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잠든 사이 고유정의 공격을 받은 전 남편은 반항했지만 반격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지방검찰청은 1일 고유정을 구속기소하면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전 남편의 폭행 시도를 막으려다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고유정의 주장과 달리 치밀하게 계획된 살인이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고유정이 시신을 감추려는 의사를 갖고 사체를 버렸다는 점을 감안해 ‘사체유기’ 대신 ‘사체은닉’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고유정이 그동안 수사상황에 대해 언론에 노출한 것을 문제 삼으며 계속 진술을 거부하다 후반에 ‘기억이 파편화돼 일체의 진술을 할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5월 25일 오전 11시30분 고유정은 아들과 함께 전 남편 강모(36)씨를 제주 서귀포시에 있는 테마파크에서 만났다. 테마파크에서 나온 세 사람은 서귀포 시내의 한 마트에 들러 저녁거리를 산 뒤 오후 4시20분쯤 고유정의 차량을 타고 펜션으로 향했다.
펜션에 도착한 세 사람은 오후 7시쯤 저녁을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고유정은 카레라이스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때 고유정이 강씨의 음식이나 음료에 수면제 성분이 들어 있는 ‘졸피뎀’을 넣은 것으로 보고 있다.
졸피뎀 성분 때문에 키 182㎝, 몸무게 80㎏의 건장한 체격의 강씨가 160㎝ 정도의 외소한 고유정에게 제압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고유정은 5월 17일 충북 청원군의 한 병원에서 졸피뎀을 처방받았다.
강씨는 이날 저녁을 먹고 오후 8시쯤 펜션에서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오후 9시16분쯤 동생에게도 전화를 걸었지만 동생은 받지 못했다. 이후 강씨의 휴대전화가 꺼진 것으로 전해졌다.
함께 있던 아들이 다른 방으로 가 게임을 시작했고 강씨는 잠을 청했다. 고유정은 이때 미리 준비한 흉기를 꺼내 공격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건 현장엔 강씨가 피를 흘리며 주방을 거쳐 출입문 쪽으로 기어간 혈흔이 남았다. 고유정은 강씨를 뒤쫓아 흉기로 공격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혈흔상 강씨가 반항한 흔적은 남았지만 반격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검찰은 범행 시간을 오후 8시부터 9시16분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다음날 오전 11시쯤 고유정은 제주의 친정집에 아들을 데려다준 뒤 다시 펜션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시신 훼손을 시작했다.
27일 오전 11시쯤 종이상자 등을 들고 펜션을 퇴실한 고유정은 인근 쓰레기 분류장에서 종량제봉투 4개를 버렸다. 정오쯤엔 시내의 한 병원에서 다친 손을 치료받았다. 고유정은 이 상처에 대해 “성폭행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고 주장하며 증거보존 신청을 했다.
그러나 검찰은 전문가 감정을 통해 고유정 몸에 난 상처는 성폭행을 막다 생긴 방어흔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고유정이 우발적 범행의 증거로 제시한 오른손 부위의 상처는 흉기를 휘두르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며 허벅지 부위의 상처도 방어흔이 아닌 자해흔으로 본다고 전했다.
한편 고유정은 지난 5월 25일 오후 제주시 한 펜션에서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고유정이 범행 동기와 시신 유기 장소 등에 대해 함구해 수사기간을 연장하면서 보강수사를 벌였지만 결국 시신을 찾지 못한 채 재판에 넘겼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