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주권반환 22주년 기념일인 1일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철회 등을 요구하는 홍콩 시위대가 물리력을 동원해 입법회 건물에 진입한 뒤 의사당을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미국 CNN방송 등 외신은 이날 홍콩 완차이의 컨벤션센터에서 22번째 주권반환 기념일 행사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홍콩 정부는 우천 때문에 장소를 변경했다고 설명했지만 현지 언론들은 송환법 반대 시위대가 주권반환 기념행사를 무산시키겠다고 예고해 행사장을 실내로 옮긴 것으로 보고 있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일부 강경 시위대는 오후 바리케이드, 금속 재질의 막대기 등을 이용해 입법회 청사 건물 1층 바깥에 있는 유리 벽 여러 개를 깼다. 이후 이들은 입법회 건물 안으로 쉽게 진입하기 위해 1층 외부에 둘러놓은 긴 금속 패널들도 떼어냈다. 입법회 건물의 유리문과 유리벽 여러 곳에 구멍이 나면서 시위대는 이날 오후 9시경(현지시간)부터 무더기로 건물 안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당초 경찰은 건물 밖에서 이들의 접근을 저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입법회로 밀려드는 시위대가 늘어나면서 건물 안으로 1차로 밀려났다가 그곳에서도 다시 밀려났다. 현재 최소 수백명 이상의 시위대가 입법회 건물 내부를 점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건물 바깥에도 역시 수천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시위대가 머무르고 있다. 강경 시위대가 입법회를 점거 대상으로 선택한 이유는 이곳이 홍콩 정부와 여당이 송환법 통과를 밀어붙인 공간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악화되자 홍콩 정부는 입법회 건물에 대해 ‘적색 경보’를 발령했다. 적색 경보를 무시하고 건물 진입을 시도할 경우 최대 10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홍콩 정부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폭력을 휘두르는 시위자들은 즉시 멈춰야 한다. 경찰은 공공질서와 안전을 위해 적절한 강제력을 집행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상자도 속출했다. 다수 시위대가 부상을 입거나 경찰에 연행됐고 시위대가 뿌린 ‘정체불명의 액체’로 경찰관 13명도 호흡곤란 등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BBC는 전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지난 18일 송환법 사과 기자회견 후 이날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람 장관은 기념사에서 “최근 사건으로 대중과 정부가 갈등을 빚었다”며 “정부가 공동체의 의견과 감정에 더욱 가까워져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위대의 자진사퇴 요구에는 답하지 않았다. 람 장관은 도로의 시위대를 피해 배를 타고 항구와 인접한 행사장으로 들어갔다고 SCMP는 전했다.
영국은 홍콩반환협정의 약속을 지키라고 중국을 압박했다. 영국 외무부는 30일(현지시간) 제러미 헌트 장관 명의 성명에서 “최근 홍콩의 시위는 우리의 홍콩반환협정 약속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며 “반환협정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으로 오늘날도 유효하다”고 밝혔다. 중국이 홍콩의 민주주의를 탄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홍콩반환협정은 한 나라 두 체제를 뜻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 정신을 담아 2047년까지 홍콩이 현 체제를 유지토록 했다.
앞서 람 장관은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지 않은 중국 본토와 대만 등의 국가 및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송환법을 강행하려다 시민들의 반발에 부닥쳐 관련 논의를 보류했다. 하지만 시위대는 송환법의 공식적인 철회와 람 장관의 사퇴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