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민 전 경찰청 수사기획관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재수사한 검찰 수사단에 ‘외압이 있었다’고 진술했으나 결국 묵살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기획관은 2013년 김 전 차관의 성범죄 의혹이 처음 불거질 당시 내사를 진행한 인물이다. 그는 지난달 국민일보와 두 차례 인터뷰하면서 2013년 당시 김학배 경찰청 수사국장에게 전화한 인물을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현 자유한국당 의원)으로 지목한 근거, 외압을 느낀 구체적인 정황 등을 검찰에 자세히 진술했다고 밝혔다.
이 전 기획관은 최근 검찰에 정보공개 청구해 얻은 100쪽 분량의 진술조서를 국민일보에 공개했다. 조서에는 2013년 당시 청와대 인사들이 경찰을 찾아오거나 전화를 건 사실, 경찰 간부들의 반응, 자신이 김 전 차관의 임명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한 사실 등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 동일하게 담겨 있다. 이 때문에 이 전 기획관은 검찰이 지난달 4일 “경찰 관계자를 모두 조사했는데 ‘외압 받은 사실이 일절 없다’고 진술했다”고 재수사 결과를 발표한 것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2013년 3월 2일 경찰청 수사국장실에 전화해 ‘김학의 별장 동영상’ 확보 여부와 내사·수사 사실을 물어본 청와대 측 인물이 곽상도 민정수석(현 자유한국당 의원)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인가.
“2013년 3월 29일 이성한 경찰청장이 부임했다. 4월초 쯤 이 청장이 김학배 경찰청 수사국장과 나를 청장실로 불렀다. 이때 이 청장이 김 국장에게 ‘김학의 사건 관련해서 청와대 누구와 통화하고 보고했느냐’고 물었다. 김 국장이 처음에는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이 청장이 ‘곽상도 민정수석이냐, 이중희 민정비서관이냐, 이정현 정무수석이냐’라고 질문했다. 김 국장은 머뭇거리다가 ‘곽상도 민정수석입니다’라고 했다. 이 청장이 ‘곽상도 민정수석과 아는 사이입니까’라고 묻자 김 국장이 ‘네, 아는 사이입니다’라고 답했다.”(곽상도 의원은 이 전 기획관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통화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설령 통화했다고 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고 답변했다.)
-경찰이 2013년 3월 이전에 내사 착수해놓고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으면서 허위보고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
“범죄정보과에서 2013년 1~2월 김학의 동영상에 대한 첩보를 수집했다. 강원도 원주 별장에서 건설업자 윤중천씨가 김 전 차관 등 사회 고위층을 상대로 접대했다는 내용이었다. 첩보단계에서는 아무리 고위공직자가 대상이라고 해도 청와대에 바로 보고하지 않는다. 수사 단계가 아니라서 보고할 정도로 무르익지 않은 상태였다.”
-김학의 전 차관의 차관 임명 내정 전 청와대 쪽과 연락을 주고받은 게 있나.
“강신명 당시 정무수석실 소속 사회안전비서관이 3월 9~10일쯤 전화가 왔다. 김학의 관련 첩보를 확인 중이냐고 했다. 그래서 ‘김학의에 대한 첩보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심각하다’ ‘공직자로 임명되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정무수석실에 확실히 건의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3월 11일에는 김 전 차관 사건 관련 범죄정보 수집내용을 김기용 당시 경찰청장에게 보고했다. 이때 보고된 내용을 토대로 하루 뒤인 12일 직접 김학의 동영상 관련 내용을 사회안전비서관실에 팩스로 보냈다. 미리 사안의 심각성을 알린 것이다. 그런데 다음 날 김학의가 법무부 차관으로 내정됐다.”
-팩스 작성 경위와 담긴 내용은.
“3월 11일 청장 서면보고를 바탕으로 ‘사회안전비서관실에 팩스를 보내라’는 상부 지시를 받았다. 팩스 문건에는 김학의 동영상 유포 경위, 동영상 내용, 심각성 등을 적었다. 팩스 기록은 확인됐지만 실제 문건은 검찰의 대통령 기록관 압수수색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정무수석실에서 먼저 알았으면 민정수석실과 얘기해서 김학의 차관 내정을 막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서로 소통을 안 했어도 문제고, 소통을 했다고 해도 내정 강행을 했으니 문제다. 검찰 수사단은 수사 결과 브리핑에서 경찰이 당시 누구나 다 아는 수준의 보고서를 냈다고 말하는데 그러면 안 된다. 3월 5일부터 이미 사건의 실체는 사실이고 범죄첩보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고했다.”
-박관천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이 경찰청에 와서 무슨 말을 한 건가.
“3월 11일 아니면 12일로 추정한다. 당시 박관천 청와대 행정관이 수사기획관실 부속실을 통해 수사국장실로 오라고 연락이 왔다. ‘이 자식이 청와대 파견 나갔다고 나를 오라 가라 그래?’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국장실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가보니 김학배 국장과 박 행정관 두 명이 앉아 있었다. 박 행정관은 엄지손가락을 보이면서 ‘기획관님, 기획관님. 이분(VIP)이 지금 관심이 많습니다’ ‘큰일납니다. 기획관님, 기획관님’이라고 내게 말했다. VIP 관심 사안인데 수사를 안 하겠다고 말을 해야 하는건지, 그래도 해야겠다고 하는 건지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대답하지 않고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 국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가 미온적 태도를 취하는 걸 보고 ‘이 사람이 분명히 외압을 받았구나’ 여기게 됐다.”
-이성한 전 경찰청장이 수사 외압을 행사한 정황도 있나.
“이성한 청장이 부임한 직후인 4월초 무렵 김학의 사건 수사보고를 하러 청장실에 들어갔다. 독대 보고한 뒤 뒤돌아서 나오는데, 이 청장이 뒤에서 ‘기획관, 남의 가슴에 못 박으면 벌 받아’라고 두세 번 반복해서 말했다. 나가다가 멈춰 어정쩡하게 이 청장을 뒤돌아봤다. ‘아 나를 치려고 하는구나’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 특이한 말이라서 기억이 또렷이 난다. 한 번은 이해를 돕기 위해 범죄 인물도를 만들어서 보고했는데 이 청장이 ‘난 기획관이 보고하는 거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라고 말했다. ‘이 사람이 나를 보통 무시하는 게 아니구나. 이 수사 계속 진행하기 힘들겠구나’ 이런 생각까지 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인사교체 명단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후 이 청장을 만나 ‘꼭 나를 내보낼 상황이면 서울에라도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경찰대학 학생지도부장으로 좌천 조치됐다.”
-이성한 전 경찰청장과 원래 아는 사이였나.
“2010년 말부터 사적으로 아는 사이였다. 이 청장이 충북경찰청장을 할 때 청주에서 만나 식사를 두세 번 했다. 부산경찰청장 시절 부산에 놀러오라고 전화 온 적도 있다. 그런데 경찰청장이 되자마자 싸늘하게 바뀐 걸 보면 당신의 뜻이 아니라 청와대 지시 내지는 외압 때문에 인사 불이익을 준 게 아닌가 싶다. 같은 맥락에서 조응천 의원이 2014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김학의 사건 경찰 수사팀을 좌천시켰다고 말한 것도 있다. 검찰 수사단에 이런 내용들도 자세히 진술했다.”
-검찰은 재수사 결과 2013년 4월 15일 경찰대 학생지도부장으로 전보 조치된 게 인사 불이익이 아니라 통상적 조치였다고 한다. 인사 불이익이었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경찰공무원법과 경찰공무원임용령에 보면 경찰 공무원에 대한 ‘전보 제한’ 규정이 있다. 해당 직위에 임명된 때로부터 1년 이내 다른 직위에 전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예외 조항은 있다. 감찰조사를 받거나 징계를 받았거나 하는 등의 내용이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는 해당 사항이 없다. 법령을 위반해 위법하게 인사조치한 것이다. 이 내용도 검찰 수사단에 진술하고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
-검찰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한 아쉬운 마음은 없나.
“검찰을 믿고 충실히 조사 받았다. 일부러 언론 대응도 자제했다. 그런데 검찰이 경찰을 허위보고하고 무능한 집단에 이중플레이한 집단으로 만들었다. 외압 있었다고 분명히 진술했는데, 진술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 건 이해가 안 된다. 최소한 외압 관련 진술은 있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판단했다는 정도로 발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글·사진=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