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저하고(上低下高) 경제’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정부는 연초 ‘마이너스 성장’을 보인 경제가 재정 투입이 가속화되고, 수출 대외 여건이 개선되면서 하반기에 차츰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개선 속도가 더뎌지고 있다. 미·중 무역갈등은 잠시 완화됐지만 아직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는 가운데 반도체 수요 회복도 늦어지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는 또 다른 ‘돌발 악재’가 되고 있다. 대외 여건 개선이 지연되자 정부도 하반기 경제의 불확실성을 언급하고 있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6월 수출액은 전년 대비 13.5% 감소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7개월 연속 전년 대비 감소다. 정부의 기대를 빗나가는 부정적인 흐름이다. 정부는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된 수출 부진에 대해 하반기 회복 가능성을 예상했다. 주요 기업들이 재고를 소진하면서 하반기에는 반도체 수요가 다시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다. 이로 인해 하반기 경제는 재정 투입과 대외 여건 개선으로 1분기 역성장(전분기 대비 -0.4%)이 2분기 이후 상승 전환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정부 기대와 달리 반도체 수요 회복 시기는 지연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회복 시기가 올해 말 또는 내년 초까지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과 중국이 지난달 말 추가 관세 보복 등을 중단하는 ‘휴전’에 합의했지만, 여전히 보호무역 전쟁이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 곧바로 영향을 주는 중국의 경제 둔화도 변수다. 중국의 지난 5월 산업생산 증가율은 전년 대비 5.0%로 17년 만에 가장 낮았다.
결국 한국 경제가 대외 여건의 ‘덫’에 걸려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수출이 유일한 성장 먹거리로 글로벌 경제에 의존성이 높은 한국 경제의 단점이 불러온 악재다. 그렇다고 정부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돌파할 묘수도 없다. 대외 여건은 한국 혼자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용 소재 규제는 수출 부진에 더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대체 동력’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외 여건이 풀리지 못하면 내수(투자+소비)라도 경제를 밀어 올리면 된다. 하지만 내수 또한 제조업 위기와 수출 부진 영향으로 회복을 못하고 있다. 그나마 소비가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지난 5월 전산업생산과 광공업생산, 투자는 모두 전월 대비 하락했다. 이런 까닭에 경기 지표도 오락가락하고 있다. 지난 5월 현재 경기 상황을 알려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14개월 만에 전월 대비 ‘감소→상승’으로 반등에 성공했다. 그러나 동행지수보다 먼저 3~6개월 앞날을 예고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 4월 ‘감소→상승’으로 반등에 성공했다가 5월 다시 ‘감소’로 돌아섰다. 이 말은 깜짝 반등에 성공한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도 곧 다시 꺾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도 하반기 상황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지난해 말에 금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생각했던 여러 경제 여건에 많은 변화가 있다”며 “글로벌 성장세뿐 아니라 세계 교역 증가율도 크게 떨어지는 등 대외여건이 예상보다 더 크게 악화했고, 미·중 무역갈등으로 세계 경제 불확실성도 점점 높아가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달 “미·중 무역갈등이 심화되고 반도체 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지연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며 “우리 경제의 향후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은 이전보다 한층 커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