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보복조치는 자충수?… 日 기업들도 피해 우려

입력 2019-07-01 17:05 수정 2019-07-01 17:27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9일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자유무역'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G20 정상회의가 끝나자마자 한국에 경제 보복조치를 감행했다. AP뉴시스

일본 정부가 1일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를 정조준한 경제 보복 조치를 감행했다. 하지만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 필요한 소재의 수출을 규제하면 한국 기업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도 자국 기업들의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일본 소재업체들의 최대 공급처가 삼성, LG, SK 등 한국 기업들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수출규제 품목은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기판 제작에 쓰는 감광제인 리지스트, 반도체 세정에 사용하는 에칭가스(고순도불화수소) 등 3개다.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는 단기적으로는 재고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대응책을 세우고 있지만 장기화에 대비해 대체재 발굴 등 대안 모색에 나설 방침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수입처 다변화와 함께 국산화 추진도 고려할 계획이다. 실제로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기업들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호재로 여기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중장기적으로 한국 기업의 ‘탈(脫)일본’을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 여론이 나오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제 반도체 소재가 안정적으로 조달되지 못한다면 중장기적으로 한국 기업들의 일본 탈출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극약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조치는 장기적으로 부작용이 크다. 세계적으로 거래망을 넓히고 있는 삼성 등은 대체 국가를 찾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10년 센카쿠열도 갈등으로 중국이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중단했던 사례를 언급했다. 신문은 “일본 제조업은 당시 중국산 희토류에 의존해 왔지만 공급지로서 중국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됐다”면서 “이후 일본은 미국 등 대체지를 개척해 중국 의존도가 낮아졌다. 이번 반도체 재료에서도 같은 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의 보복조치가 장기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어차피 아베 신조 정부가 오는 21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보복조치 카드로 활용했다는 의심이 짙은 상황에서 자국 기업들의 피해가 커질 경우 중단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편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중국 매체들도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환구시보는 “일본 정부가 한국의 징용 배상 요구에 대한 보복을 위해 무역 제재에 나섰다”면서 “일본이 미국에서 배워 무역 제재 놀이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민망도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의장국인 일본이 한·일 정상회담을 거부했다”면서 “일본이 한국에 수출 제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이미 나빠진 한·일 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