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엔지니어로서 잘 버틸 수 있겠어요?”
“해외영업하면 해외고객 접대해야 하는데 그런 거 잘할 수 있겠어요?”
사회 속 성차별이 많이 완화됐다고는 하지만 취업시장엔 여전히 ‘남자인 게 스펙’으로 작용하고 있다. 능력 중심으로 인재를 선발하겠다며 블라인드 채용을 하지만, 여성 지원자는 결국 면접에 가면 ‘여성’으로서 조직 생활을 잘 해내고 견딜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을 받는다. 남성 지원자에게는 묻지 않지만 여성 지원자라면 한 번씩은 듣게 되는 질문들이다.
엔지니어 직무로 취업준비 1년차에 접어든 한모(24)씨는 “아무래도 성별이 채용 과정에서 주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며 “(지원하려는) 직무 자체도 그렇고 직장에도 남자가 많다보니 남자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여전히 남자인 게 스펙이다”고 말했다.
2년차 취업준비생 김모(25)씨는 “예전엔 직무경험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운이나 타이밍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며 “면접에서 만난 임원과의 케미나 당시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성향에 딱 부합하는 등 타이밍이 맞아야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지원자 개인의 역량도 역량이지만, 그 외의 요소가 취업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기업들의 말은 달랐다.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은 1일 상반기 신입사원을 채용한 기업 276개사를 대상으로 ‘상반기 채용 결산 및 합격스펙’을 조사한 결과를 정리해 발표했다. 조사 결과 기업들은 신입사원 채용 시 당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스펙으로 ‘전공’(26.1%)을 꼽았다. 이어 ‘기업체 인턴 경험’(17.4%), ‘보유 자격증’(13.8%), ‘대외활동 경험’(7.6%), ‘인턴 외 아르바이트 경험’(7.6%)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인턴 경험 보유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상반기 신입사원을 채용한 기업 10곳 중 6곳(57.6%)은 인턴 경험자가 있었고, 전체 신입사원 중 인턴 경험이 있는 이들의 비율은 평균 23.6%로 나타났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22.9%였던 것과 비교해 소폭 늘었다.
취준생들도 직무 적합성 차원에서 관련 전공과 자격증 보유가 중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했다. 특히 어학점수를 보유하는 건 기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올 상반기 신입사원의 외국어 성적 보유 비율이 크게 늘었다.
토익 성적보유자가 62%로 지난해 상반기(51.6%) 대비 10.4% 포인트 늘었다. 영어 회화점수 보유 비율도 올 상반기 38.8%를 기록해 지난해 상반기(29.7%)보다도 10% 포인트 가까이 높아졌다. 토익 성적을 보유한 신입사원들의 평균점수는 740점이었고, 토익스피킹 평균 레벨은 6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자격증이라고 다다익선(多多益善)은 아닌 듯했다. 영업 직무를 준비하고 있는 김씨는 “자격증이 많으니까 오히려 면접에서 ‘왜 이런 자격증을 딴건지’ ‘왜 자격증을 이렇게 많이 딴건지’ 같은 질문을 들었다”며 “자격증이 있어도 밉보일 수 있고, 자격증이 없어도 마음에 들 수 있는 것 같다. 지금은 그저 나와 딱 맞아떨어지는 면접이 오길 기다릴 뿐이다”고 말했다.
전공의 경우 여전히 이공계열 선호 현상이 강했다. ‘이공학계열’이 41.2%로 압도적이었고, ‘인문·어학계열’이 20.1%, ‘상경계열’이 15.3%, ‘사회계열’이 10.9%로 뒤를 이었다. 직무에 직접 활용하기 어려운 전공을 할수록 합격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김씨는 “영어영문을 전공했지만 영어는 누구나 다 할줄 아는 언어라서 크게 메리트가 되지 않는 것 같다”며 “그래서 지원하는 직무에서 전문성을 드러내기가 어렵고 그런 분야일수록 T.O.도 적다보니 ‘내가 공대였다면 이렇게 취업이 힘들었을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여자 문과생은 성별과 전공 양쪽에서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취업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준생들은 좌절하면서도 여전히 자격증 공부를 하고 관련 인턴 경험을 쌓고 있다. 한씨는 “직무와 관련해 자기소개서에 쓸 말이 생기기도 하고 경험이 없으면 아무래도 면접에서 불리하니까 이번 방학동안 인턴십을 찾아보려 한다”고 전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