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연극, 연극은 오늘이다’라는 슬로건으로 서울 대학로에서 개막된 제37회 ‘대한민국연극제’가 지난 25일 폐막식을 끝으로 6월1일부터 25일까지 달리며 국내 최대 연극축제로 대장정을 마쳤다. 이번 대한민국연극제는 한국연극을 견인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총 출동됐고 본선에 오른 16개 시도를 대표하는 작품들은 지역의 연극성과 작품성을 선보이며 전국을 연극 하나로 이었다. 올해 서울에서 개최된 대한민국연극제는 집행위원장(서울연극협회 지춘성 회장), 조직위원장( 한국연극협회 오태근 이사장), 박장렬 예술감독으로 꾸려져 16개 시도 작품, 국내외 초청작, 야외·거리공연, 낭독 극, 체험 공연행사와 차세대 연극인들의 무대인 네트워킹페스티벌 등은 시민들의 호응과 참여가 높았다. 특히 대한민국연극제의 전신인 ‘전국연극제’의 전통을 이어가기로 한 것과 차세대 연극인 열전, 다양한 부대행사와 프로그램들이 질적으로 향상되었다는 평가가 따랐다.
본선에 오른 작품들은 지역의 특수한 상황에서도 작품성이 높은 수작을 쏟아냈다. 일부 작품들은 배우들의 기량도 탄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들도 작품평가를 공정하게 하면서 이번 대한민국연극제의 신뢰성을 더했다. 이번 37회 대한민국연극제 대상(대통령) 작품은 경남지역 극단 예도<꽃을 피게 하는 것은>으로 돌아갔다. 이 작품으로 희곡상, 연출상을 수상하며 3관왕이 된 극단 예도는 1989년(10월)에 극단을 창단한 뒤로 굵직한 작품과 극단의 독창적인 시선으로 작품을 선보여 오고 있다. 이번 작품 <꽃을 피게 하는 것은> 현직교사인 단원이 직접 창작해 초연한 작품으로 대한민국의 괴물 같은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단원 40여명 대다수가 직장을 가졌고 연습은 퇴근 후 모여 “기죽지 말고 연극 하자”며 이를 악물고 매달렸다고 한다. 단원들의 화력(火力)이 무대를 감동과 생명력 있게 그려냈고, 배우들의 연기도 조화로운 앙상블을 만들어냈다. 한명에게 주어지는 최우수 연기상에는 경기 극단 한네 <꽃을 받아줘>에서 환자1로 열연한 배우 정현에게 돌아갔다. 1969년 연극 <망나니>로 데뷔한 정현 선생은 실험극장 동인으로 극단민예극장 단원을 거쳐 대표를 지낸 후 반평생 50년을 배우로 무대를 지키고 있다. 이번 대한민국 연극제 3개 작품의 연극평론은 대구극단 온누리의 <외출>까지 4개 작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연극제가 개최되는 동안 연극평론가들이 본선 작품 전체를 월간 한국연극(7월호)에 게재하게 된다.
치매와 황혼의 멜로디 <오거리 사진관>
극단 소백무대는 1984년 <양반전>(유현종 작, 조재현 연출)으로 창단공연을 해 35년 동안 경북지역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중견극단이다. 전국연극제(대한민국연극제 전신) 제6회 <서국기원486> (이강일 작, 허만웅 연출)으로 참가해 올해 37회 대한민국연극제에 경북지역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오른 작품인 <오거리 사진관>(작, 한윤섭·연출, 엄성필·6월13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은 31년 만에 대한민국연극제로 외출을 나왔다. 연극은 치매에 걸린 노년의 죽음과 한 평생 살아온 남편을 잊지 못해 두 부부가 죽음으로 향하는 황혼의 멜로디를 흑백사진처럼 그리면서도 대를 잇지 못하는 한국사회 유교와 가족의 붕괴, 노년과 가족세대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이번 대한민국연극제에서는 어머니로 분한 배우 심순영이 연기상을 수상했다.
무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2남 1녀를 두고 한평생 가족을 지켜온 아버지(김창남 분)는 치매(알츠하이머)에 걸려 정신이 돌아올 때 동네 인근 오거리 사진관에서 영정사진을 촬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지막 사진은 가족을 찾아가지 못한 채 세상을 겉돌고 온전한 죽음으로 귀천(歸天)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일 년 전 치매로 세상을 뜬 생생한 남편의 모습을 꿈에서 마주한다. 아버지는 꿈속에서 “오거리에 있는 연주보살을 찾아가면 집에 다녀 갈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제삿날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연극은 삶의 현실과 어머니의 꿈 이야기가 교차 되어 전개된다. 큰 며느리(최경희 분)는 제사(祭祀)를 기독교식으로 간소화 하자고 하고 큰아들도 집안 유교적 전통에 관심이 없다. 막내아들(이황 분)은 실제 아버지가 나타나면 “대박”이라며 촬영해서 돈벌 궁리를 한다. 치매에 걸려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과 갈라진 가족풍경에서 비쳐지는 노령화 문제, 치매와 질병, 노인복지, 고독사 등의 현대사회의 문제는 여전히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냉소적인 시선처럼, 치매로 인한 망자의 죽음이 온전한 죽음이 될 수 없는 사회적 시선을 투영한다.
<오거리 사진관>을 견인하고 있는 것은 어머니의 꿈을 투영하는 장면들이 현실과 비현실을 중첩시키고 있는 극적 설정들이다. 오거리 사진관과 아버지의 영정사진 이야기, 제삿날과 가족풍경, 연주보살 이야기, 죽은 아버지의 방문과 가족의 현실감 있는 대화를 지나 노(老) 부부가 손을 잡고 귀천으로 향하는 죽음까지 <오거리 사진관>의 구성은 어머니 꿈이 현실처럼 전개되는 환타지적 설정이다. 노년의 치매와 죽음에서도 황혼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그리고 극을 웃음으로 받치고 있는 것은 ‘연주보살이야기’다. 실제 부인의 생일날 아버지는 집을 찾아오고 가족과도 스스럼없는 대화가 이루어진다. 연주보살이야기는 남편을 그리워하는 부인의 무의식 세계가 현실처럼 전개되는 장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에 이르면, 연주보살은 오거리 사진관 주인이 되고 어머니는 남편처럼 치매에 걸려 마지막 영정사진을 촬영한다. 남편과 같은 치매에 걸려도 두 부부는 손을 잡고 애틋한 사랑을 그리며 아름다운 죽음으로 사바세계를 향한다.
무대 뒤편으로는 마치 노년의 죽음과 노령화로 인한 사회적 죽음들을 상징화해 빈 여백으로 된 검정 실루엣의 영정사진을 여러 개로 형상화해 의미를 더했다. 마치 “노년에 치매로 인한 죽음은 당신이 될 수 있다”라는 메타포이며, 고령화 사회의 치매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러나 제삿날 이후, 오거리사진관을 찾아가 영정사진을 촬영하는 현실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현실과 꿈이야기로 그려지는 <오거리 사진관>은 극적 경계가 모호한 상태로 장면이 그려져 작품의 탄력이 감소됐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부부의 죽음을 극대화해 무대 뒷면을 죽음의 공간으로 확장해 작품주제를 관통시키려는 공간의 미학적인 시도가 돋보였다. 희곡을 온전하게 따라 가면서도 연출적인 시선이 극으로 확장되지 못한 것은 아쉽다. 어머니 역 심순영은 극중 인물로 분해 <오거리 사진관>을 흑백사진처럼 끌고 갔고 아버지 역(김창남)은 날 것 같은 촌부의 아버지를 담아냈다. 죽어서도 집과 삶의 현실을 떠나지 못하는 망자의 죽음은 비로소 남편을 향한 애틋한 사랑으로 온전하고 아름다운 죽음이 된다는 설정이다. 치매로 인한 노년의 죽음을 사회적인 시선과 물음으로 진지하게 파고든다.
아픔의 역사와 치유 부산 극단 동녘 <썬샤인의 전사들>
대한민국 남·북 평화온도는 여전히 뜨겁다.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회담으로 한반도 평화 가능성은 국제사회로 점화되면서 ‘종전선언’은 정치적 해법으로 풀 수 없는 안개속이다. 판문점 비핵화와 평화메시지, 판문점 도보다리 대화, 북측 경계선(MDL)에서 보여준 평화의 악수들은 강렬한 사진으로 남아있다. 싱가포르와 베트남으로 이어진 북미 ‘비핵화’ 담판은 미국과 국제사회에 막혀있고 평화는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있다. 이번 트럼프의 방한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DMZ)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트럼프와 김정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세기적 만남은 내년 6,25전쟁 70주년을 앞두고 ‘종전선언’과 ‘비핵화평화’가 재 점화될지, 북측 땅을 처음 밟은 미합중국 대통령으로만 기록될지 평화의 길목은 맑고, 안개는 그대로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길목을 막고 있었던 역사의 오류와 과거사 문제들이 ‘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 햇볕처럼 ‘진실규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깊게 패인 역사의 상혼과 상처는 그 아픔을 온전히 아물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대적 분위기에서도 이번 37회 대한민국 연극제에서 은상을 수상한 부산 연극제작소 동녘의 <썬샤인의 전사들>(김은성 작, 최용혁 연출·6월9일·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은 김은성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 만큼, 근현대사의 방대한 역사를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2016년도에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부새롬 연출로 초연 (2016.9.27~10.22) 되면서 탄탄한 서사를 통해 치유 되지 못한 대한민국 아픔의 역사를 그려냈다. 1940년대부터 현재까지 무대로 소환해 역사를 마주하고 있는 ‘현재의 시선’을 투영하며 치유되지 않은 부채의 역사에 송곳 같은 말을 건다.
연극은 지금의 시대로 말을 걸며 근현대사의 방대한 분량의 역사를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탄탄한 서사를 통해 제 살로 돌아올 수 없는 대한민국 피부에 부착된 아픔의 역사를 소환하며 인터미션 포함해 3시간 45분 동안 전개되는 굵직한 에피소드는 무대로 파편화 되면서 근현대사의 풍경을 두꺼운 책처럼 그려내고 있다. 케이타워 참사사건으로 아내와 딸(봄이)의 죽음과 환영, 제주소년 카츄사 나선호와 4,3사건, 한국전쟁과 상자 속에 갇힌 전쟁고아 순이 이야기, 만주청년 강호룡과 중공군, 일제강점기와 정신대, 80년대 전두환 정권의 검열과 폭력 그리고 고문, 조작의 역사, 빨갱이 프레임 를 마주보게 하고 극중 인물 소설가 한승우로 통해 치유되지 못한 역사는 수첩의 기록과 소설쓰기를 통한 현재로 이어지는 방대한 서사로 그려내고 있다.
<썬샤인의 전사들>은 과거 한대길과 수첩의 기록으로 박혀 있는 인물들을 소환하며 근현대사역사의 이야기를 소설로 완성해 가는 이야기다. 한승우에게 죽음으로 실종상태에 있는 봄이와 부인은 여전히 살아있는 존재로 나타난다. 과거 한대길과 마주하며 용서의 구원을 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환영으로 나타난 부인에게 봄이를 다시 낳겠다고 말한다. 승우는 아내 뱃속에 있는 봄이에게 속죄의 절을 함으로써 치유되지 않는 역사의 오류와 반복은 봄이 말대로 “아직 끝나지 않았어.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야”가 되는 현재가 된다. 치유된 역사가 오늘을 그릴때 잉태한 아이는 역사의 부끄러운 그림자가 없는 대한민국 사회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놀이적 장면전환과 파편화된 에피소드가 과거-현재로 교차되며 전개되는 대한민국 근현대사 바라보기는 ‘현재의 시선’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여전히 치유되지 못하고 있는 벗겨내야 할 질긴 시간, 인간의 절규와 아픔으로 박제된 핏물의 역사를 따라가고 있다.
온전히 치유되지 못한 아픔과 역사는 마지막 한대길의 이야기에서 마주보기를 시도함으로써 역사의 화해와 치유를 시도한다. 한승우 과거 이름인 한대길은 문창과 운동권 출신이다. 군복무중 보안사 군무원인 강종양에게 반복적인 “굿 에프터 눈이여”을 들으며 조작된 역사에 탑승했다. 폭력과 고문의 80년대 뒤틀린 역사를 그려온 강종양은 노년이 되어도 건재하다.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한승우에게 부탁해 자서전을 준비하고 있는 변호사 강태훈이 강종량의 손자인 것을 알게 된다. 여전히 친일과 오류의 역사는 청산되지 못하고 반복되어 현재시간으로 이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선명한 자국들을 그려내고 있다. 극은 근현대사를 돌아 마지막에 이르러 군대시절 강종량의 문인학생 간첩단 사건에 동조한 한대길과 개명한 뒤 소설가로 살아오면서 과거를 온전하게 거세하지 못한 채 살아온 한승우를 마주보게 함으로써 한국사회 근현대사를 지나며 삼켜야 했던 오류의 역사를 고백하고 구원의 속죄를 한다. 연극은 3년 전 케이타워 참사사건으로 아내와 딸(봄이)을 잃은 뒤 시신을 찾을 수 없없던 한승우는 자살 시도를 하고 환영(幻影)으로 나타난 딸(봄이)과의 드라큘라 블랙드라를 정의의 썬드라 언니와 거울로 악당을 물리치는 환영의 극중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번 부산극단 동녘의 <썬샤인의 전사들>은 김은성 작가의 방대한 서사를 그대로 유지하면도 영상과 이미지를 확장해 치유되지 못한 역사의 흔적들을 소환하고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 (전쟁, 죽음, 역사, 시대의 아픔)를 그려갔다. 특히 상자(뒤주)속에 갇혀 죽은 순이 삶의 역사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아픈 그림자다. 여전히 상자 속을 걸어 나올 수 없는 순이의 비극적인 죽음은 오늘날에도 온전하게 그 아픔이 치유 되지 못하고 있는 분단의 역사이며 여전히 청산되지 못한채 기다릴수 밖에 없는 유효한 현재의 시선이다. 극단 동녘은 극이 전개되기 전부터 무대에 비극의 역사를 환기시켜 순이가 갇혀 있는 상자를 올려놓고 시각적으로 언어화 했다. 살아 걸어 나올 수 없는 순이 죽음을 품고 있는 상자는 생생한 역사의 흔적이며 죽음의 영혼과 비극의 역사를 현재시간으로 돌려놓는다.
부산 동녘은 상자를 무대에 전면으로 배치하고 현재-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파편화된 에피소드를 상자로 연결해 여전히 청산되지 못하는 역사의 흔적들을 투영하고 치유되지 못한 역사를 안고 살아가는 현재를 환기한다. 특히 나선호와 제주 4·3사건의 장면과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망자의 영혼들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밀랍인형으로 등장시켜 진실이 가려있는 한국사회의 풍경과 오류의 역사를 투영시켰다. 카츄사 선호가 중공군이 습격하기 전까지 상자 속에 갇혀 있는 순이 에게 먹을 것을 건네주며 “금방 올게”의 약속은 올해 6, 25전쟁 69주년이 되어도 순이의 상자는 열리지 못한 채 놓여있다. 전쟁의 폭격으로 갱도에 갇힌 죽음은 땅으로 찢겨져 묻혀버린 순이의 죽음과 전쟁의 폭음을 영상과 조명으로 투사해 장면을 입체적으로 시도하려고 했다. 극의 마지막 부분에 과거 한대길과 현재 한승우를 마주보게 해 개인의 과거사(史)와 역사의 부채를 속죄하게 하는 장면설정도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역사를 마주보게 한다.
승우의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소설쓰기는 허구가 아니라 생생하게 기록되어야 할 역사로 망자가 써내려간 수첩과 동일하다. 참혹한 죽음과 역사의 현장들이 증언과 기록으로 남게 된다. 3년 전 케이타워 참사 사건으로 딸(봄이)과 부인의 시신을 찾을 수 없었던 한승우는 이들 죽음에 속죄를 함으로써 비로소 대한민국사회 미래를 살아가게 될 봄이를 다시 잉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에 작가 한승우가 야학의 선생으로 돌아와 탈춤을 추는 장면은 80년대 저항의 역사다. 자기 속죄를 통해 비로소 정의와 시대의 진실을 함성으로 저항한 온전한 운동권 학생으로 돌아가고 싶은 인물의 내면과 욕망이다. 그러나 이 장면이 단순한 탈춤추기로 장면이 그려진 것 같았다. 봄이, 명이 역할을 한 이효림, 박신영과 극을 받치고 있는 배우들의 고른 연기도 공간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썬샤인의 전사>를 극단 동녘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번 부산극단 동녘의 <썬샤인의 전사들>은 대공연장의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했으나 방대한 서사를 촘촘한 무대로 연결 하는 데는 장면전환과 극중 전개가 느슨했다. 전체적인 균형을 이루고 끌고 가려는 의도에서인지 텍스트와 근현대사를 쭉 읽는 듯 했다. 장면을 날카롭게 비추어내는 응집력이 약해 역사의 울림을 무대로 강하게 장전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김은성 작가의 방대한 서사를 1995년도에 창단되어 전통과 현대화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극단 동녘의 시선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들이 돋보였다. 앞으로 기대되는 지역 극단이다. 여전히 죽음으로 살아진 순이가 갇힌 상자는 사라지지 않은 채 ‘똑, 똑, .똑’ 거리고 있는 것 같다.
분단의 비극과 평화의 희망 극단 파람불 변유정 연출 <고래>
강원도 속초 극단<파·람·불>은 바람과 파도, 연극의 열정을 불로 표현한 극단이름으로 1989년에 창단해 91년도 제9회 전국연극제에서 <한씨 연대기>와 33회 전국연극제에서 <전명출 평전>(백하룡 작, 변유정 연출)으로 대통령상(대상)과 연출상을 수상해 역대 2회 대통령 상을 수상한 극단이다. 34회 대한민국연극제(충북 청주)에서도 속초극단 연합팀은 <카운터 포인트>( 이반 작, 변유정 연출)로 금상과 무대예술상을 수상했다. 이번에도 <고래>로 금상을 받았다. 강원 속초 파·람·불의 <고래>(이해성 작, 변유정 연출/6월12일 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는 본선이 확정된 뒤에도 속초 도심까지 덥고 정치권까지 불길로 흔들어 놓은 대형 속초 산불로 무대세트와 의상들이 완전히 전소됐다. 연극인들과 한국연극협회 협조로 유실된 무대세트를 복구하라며 보태진 성금과 온정으로 단원들은 무대를 다시 만들기 시작했고 본선을 준비해야 했다. 그만큼 극단 파람불의 연극 <고래>는 속초의 강한 불과 파도를 타고 재건해 공연된 작품이다.
이번 산불로 파람불 극단과 강원도 연극팀들은 마음고생에 시달리며 무대를 재건하고 연습도 병행하면서 극도의 긴장감과 피곤함이 누적된 탓인지 공연이 끝난 뒤 극단 파람불 대표(석경환)은 충혈된 눈으로 마지막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고 단원들도 젖어 있었다. 특히 일본극단 스즈키다다시 배우출신으로 스즈키의 대표적인 작품에 활동하면서 연출로도 좋은 성적표를 얻고 있는 변유정 연출이라는 점에서도 기대가 된 작품이다. 연극 <고래>는 작가이자 연출자인 이해성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만큼 초연무대에서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 작품이다. 1998년 무장공비 9명을 태운 북한 잠수정이 강원도 속초 심해까지 내려와 남측 꽁치잡이 어선 그물에 걸려 표류하다 발각되어 북한 잠수정에서 9명이 시신으로 발견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요즘 북한 비핵화에 둘러싸여 있는 평화의 길목에서 이들의 죽음을 현재로 되돌려 텍스트가 무대로 변주되고 잠수정 내부가 연극적인 무대로 활용되는지 전작작품과 비교될 수 있는 줄기였다.
동해바다 한가운데 심해에 잠겨있는 북한 잠수정은 남한사회로 침투해 정찰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저격수들은 태운 잠수정이 남측에 발각된다. 자본주의 사회로의 투항과 자발적인 죽음의 선택 사이로 저격수와 잠수정 요원들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진다. 남측 물건에 스며들어 있는 자본주의는 숨죽여 동경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지만 복종과 명령은 동일민족을 향해 총을 겨누고 누군가는 죽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비극의 현장이다. 이들의 대립과 갈등을 통해 분단과 비극, 삶과 죽음, 갈라진 이데올로기를 마주하며 덜컹거리며 안개 속에 멈춰서 있는 대한민국 ‘평화버스’를 연상하게 된다. 연극 <고래>는 북한 침투 요원들이 투항의 자유를 선택하지 않고 자유를 죽음으로 삼켜버린 이야기를 작가적 상상을 통해 분단으로 갈라진 역사의 비극에서 인간의 절규와 삶의 욕망들로 꿈틀거리며 해수수면을 채우는 잠수정 내부를 비추고 있다.
연극 <고래>는 남측 동해심해로 침투한 북측잠수정은 속초 마을까지 정찰하러 나간 북측 저격수 3명과 기관장을 남측해수 잠수정에서 조장, 부기관장, 무전장이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저격수들을 기다리며 북한에서 살아가는 고단한 삶들을 쏟아내고 조장(석경환 분)은 가족과 아이를 그리워하는 이야기와 무전장(윤극중 분)의 인간애적인 삶과 고단함이 겹쳐질 때 저격수들은 잠수정으로 돌아온다. 남한에 침투해 마을인근 슈퍼마켓서 대기하고 있는 잠수정요원들 부탁을 받고 가지고온 분유, 초코파이, 브래지어 등 남측 자본주의 상품들을 놓고 일부 저격수와 잠수정 요원들은 동경하고 조롱의 파티를 벌이면서 무대는 분단의 현실과 이념의 갈등으로 잠수정 내부는 이들의 격렬한 토론장이 된다.
뼛속까지 북한 사회주의 이념을 신봉해온 이들도 남한사회의 삶을 마주본 뒤 흔들리는 내면에서 이념을 넘어서는 인간애적인 갈등을 보일 때 쯤 잠수정은 남측 꽁치잡이 어선 그물에 걸려 북측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긴박한 상황으로 변화된다. 무대는 일순간 심해를 강렬하게 비추는 서치라이트가 잠수정 주변을 밝히고 북측 요원들은 잠수정의 심해위치가 음파탐지기에 발각되지 않고 북한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사적이고 치열한 생존의 작전을 펼친다. 연출은 무대잠수정 앞으로 이들의 대화를 활자화된 영상으로 비추며 긴장감을 더 하고 극적 분위기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영화음악적인 멜로디를 흘려 긴박한 극적 긴장감을 형성한다. 남측으로 투항하라는 통신을 받은 북측 잠수정 요원과 저격수 들은 총을 겨누며 죽음의 사투를 벌인다. 자폭지령을 받은 요원들은 살아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땅이 되고 죽음과 자유세계의 선택에서 갈등하는 요원들을 향해 총을 겨누며 죽음의 핏물이 고여 가는 잠수정 내부를 비춘다.
강원도 속초 극단 파라불의 <고래>는 잠수정에서 남은 최후의 무전장이 죽음을 선택하는 결말보다는 삶을 구원하고, 자유세계의 통로를 향해 절규하는 한 인간으로 바라본다. 연출은 마지막 장면에서 무전장이 잠수정 상부 통로를 향해 구원을 절규하는 것으로 끝난다. 서로 총을 겨누며 죽어간 동료 잠수정요원 손을 잡고 삶의 희망을 구원하는 한 인간의 애절한 절규에서 이데올로기는 무너지고 자유의 통로를 뚫고 나올 수 없는 현실을 형상화 한다. 마치 미·중을 비롯한 국제사회로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둘러싸여 판문점 회담을 통해 비쳐진 ‘종전선언’과 평화의 염원이 세계 국제정치 통로를 빠져 나올 수 없는 것처럼. 국민적 평화통일의 희망은 올해 6,25전쟁 69주년이 되어도 희망의 절규와 함성소리만 고여 있다.
연극 <고래>가 달라진 것은 잠수정 내부를 디테일하고 비추는 무대와 심해에 표류하는 잠수정 표현하기 위해 영상과 조명을 투사해 무대 주변을 바다 전체로 활용하려 한 점, 고래의 이야기가 마치 영화의 극중극 이야기로 그려내려는 연출의도로 마지막 장면은 영화 스크린을 바라보는 것처럼 잠수정 내부를 비추며 투사되는 자막을 사용하고 음악과 음향의 입체성을 더한 것이 연극 <고래>의 외면을 풍부하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탄력적인 표현 요소들에도 고정화된 무대는 긴장감 있는 잠수정내부를 입체적으로 그려내지 못했다. 연극 <고래>를 대공연장으로 이식해야 하는 공간의 특수한 상황도 있겠지만 욕심을 부린다면, 북측 잠수정이 심해 속에서 파장과 진동을 느낄 수 있도록 회전무대와 입체적인 무대로 형성했다면 어땠을까. 조명과 영상, 음악과 효과로만 투사된 긴장감으로는 무대전면에 배치한 대형 잠수정 내부를 넘어서질 못했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강원도 사투리로 북측 요원들을 표현한 배우들의 연기는 조장으로 분한 석경환(파람불 대표)을 비롯해 극을 견인하는 연기들을 보여주었다. 아쉬운 점은, 배우들이 더 드러날 수 있었는데도 장면을 전체적인 미장센으로 배치하고 극의 균형을 이루려는 연출시선으로 삶과 죽음의 사투에서 올라오는 각 인물의 내면과 갈등을 극명하게 장면으로 도려내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장면전개의 속도는 차이가 없었지만 전체적인 앙상블은 심해의 수면처럼 조화를 이루었다. 여전히, 극적인 파장과 진동이 아쉽다.
▶제37회 대한민국연극제 단체, 개인 수상작품은 ▲단체상 대상/대통령상/경남 극단예도<꽃을 피게하는 것은> ▲금상 경기 극단 한네 <꽃을 받아줘>, 강원 속초 파람불<고래>, ▲은상 부산 동녘 <썬샤인의 전사들>, 전북 극단 창작극회<아부조부> 제주 극단 가람 <후궁박빈>, 대전 극단 세익스피어 <백년의 오해> ▲개인상, 연출상 이삼우(극단예도/ 꽃을 피게하는 것은), 희곡상 이선경(극단예도/ 꽃을 피게하는 것은) ▲무대미술상 조세현(썬샤인의 전사들) ▲최우수 연기상 정현(꽃을 받아줘), 심순영(오거리 사진관), 이승준(후궁박빈) ▲신인연기상 류완선(극단 십년후/냄비), 김란(극단 홍성무대/ 1937년 시베리아 수수께끼)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