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후 경력단절을 해소하고 부푼 마음으로 출근한 직장인 최모(45)씨는 3년 동안 계속 ‘퇴사 위기’에 놓여 있다. 직원이 10명도 안 되는 작은 직장이다 보니 업무의 경계가 불분명한 것은 둘째치고 대표가 시키는 ‘잡일’이 너무 많은 게 가장 큰 이유다. 최씨는 “대표 손주 옷 구매대행도 해보고, 고양이 간식도 사러 다녀 봤다”며 “재취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까, 애들 학원비라도 벌려고 ‘참을 인’자 수백번씩 써 가면서 다닌다”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오는 16일부터 시행되지만 최씨 사례처럼 ‘직장 갑질’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 조사 결과 10명 중 6명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크루트는 직장인 회원 80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6~28일 설문조사를 한 결과 64.3%는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것으로 답했다고 1일 밝혔다.
소규모 회사에서 일하는 경우에서는 직장갑질을 당해도 호소할 곳조차 마땅치 않고, 최씨처럼 어렵사리 직장을 구한 경우에는 실업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작정 참는 경우도 많다. 이번 조사에서도 중견기업 재직자의 68%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고, 대기업은 56%였다.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로는 ‘직속상사, 사수, 팀장’이 51.0%로 가장 많았다. 이어 ‘타 부서 상사’(13.4%), ‘임원급’(11.9%), ‘대표’(11.8%) 등 순이었다. ‘동료, 동기’(8.4%)나 ‘대표의 가족구성원’(2.4%)을 가해자로 꼽은 경우도 있었다.
괴롭힘 유형은 ‘업무와 무관한 허드렛일 지시’(11.6%)가 가장 많았다. 이어 ‘욕설·폭언·험담 등 명예훼손’과 ‘업무능력·성과 불인정·조롱’(각 11.3%), ‘업무 전가’(10.7%) 순이었다. 인크루트 관계자는 “직장인들은 담당업무가 아닌 잡무지시를 하는 것, 본인의 업무를 전가하는 것에 불쾌감과 괴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회식참석 강요’(7.7%), ‘근무환경 악화’와 ‘근무시간 외 SNS로 업무 지시’(각 7.1%), ‘사적 용무 지시’(6.7%), ‘근로계약내용 불이행·불합리한 처우’(5.3%), ‘체육대회·장기자랑 등 사내행사 참여 강요’와 ‘따돌림’(각 4.5%)이 주요 갑질 유형으로 꼽혔다.
이 밖에 ‘업무 배제’(4.0%), ‘CCTV감시’(2.8%), ‘폭행·협박’(2.3%), 회사 홍보 차원에서 프로필 사진을 바꾸도록 강요하는 등의 ‘SNS’ 갑질도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은 제대로 된 피해 보상을 받기도 어렵고 2차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 직장 갑질로 인한 피해 결과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6.7%는 ‘공황장애, 우울증 등의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이어서 ‘원치 않는 퇴사’(17.5%), ‘인사 불이익’(11.5%), ‘신체적 피해’(8.1%)를 당한 경우도 있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