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도주 우려”→“증거인멸 우려 없다” 법원 판단 왜 바뀌었나

입력 2019-06-29 04:00 수정 2019-06-29 04:00
김명환(앞 줄 왼쪽) 민주노총 위원장이 28일 서울 강서구 KBS스포츠월드 2체육관에서 열린 민주노총 전국 단위사업장 비상대표자대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은 조건부 석방 하루 뒤인 28일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에 참석했다. ‘투쟁을 구속말라’는 글귀가 쓰인 검정 티셔츠를 입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1일 서울남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발부한 구속영장에 대해 27일 같은 법원 형사합의부가 ‘합당하지 않다’는 판단을 하면서 이날 행사장에 참석할 수 있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오상용)는 김 위원장이 청구한 구속적부심사 사건에서 보증금 1억원 납입을 조건으로 석방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석방 이유로 “이 사건은 형사소송법 제214조의2 제5항 단서 각 호의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른 이유는 적혀 있지 않다.

형사소송법의 해당 조항은 법원이 구속 피의자의 석방을 명할 때의 제한 사유로 ①증거 인멸 염려 ②피해자나 재판 주요 참고인 측에 대해 해를 가할 염려,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재판부는 김 위원장의 증거 인멸 우려가 크지 않고, 피해자 등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도 높지 않다고 본 것이다.

이런 결정이 나오기 6일 전 서울남부지법 김선일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도망의 염려가 있다”며 검찰이 청구한 김 위원장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런데 구속적부심을 맡은 형사합의12부는 도주 우려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 없이 김 위원장 사건이 ①, ② 사항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상반된 결정을 내렸다.

구속된 피의자가 구속적부심 절차를 통해 풀려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통상 폭행을 휘두르거나 남에게 상해를 입힌 피의자가 해당 범죄의 피해자와 합의를 하는 등 특별한 사정변경이 있는 경우에 제한적으로 청구 인용 결정이 나온다.

법원행정처가 발간하는 사법연감을 보면 2017년 전국 법원에서 처리된 구속적부심 사건 2319건 가운데 333명에게만 석방 결정이 내려졌다. 석방률 14.3%에 불과하다. 같은 해 구속영장이 발부된 2만8400명을 기준으로 보면 구속 피의자가 구속적부심 절차를 거쳐 풀려나는 비율은 1%대에 불과하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별다른 사정 변견이 없으면 구속적부심이 인용될 가능성이 아주 낮기 때문에 청구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차라리 기소 이후 재판부가 정해진 뒤 보석을 노리는 게 현실적”이라고 전했다. 2017년 보석 청구 사건(처리 6508건)의 허가율은 35.5%였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27일 구속적부심사를 거쳐 서울 구로구 남부구치소에서 석방되고 있다.


재판부는 김 위원장의 석방을 명하면서 추가적인 조건을 달았다. 현 주소지에 거주해야 하고, 법원 또는 검사가 지정하는 일시·장소에 출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도망 또는 증거를 인멸해서 안 되며 여행 및 출국 시 사전에 법원·검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도 붙였다. 김 위원장이 이 지정된 조건들을 위반하면 석방이 취소돼 다시 구속될 수 있고, 보증금 1억원 역시 몰수될 수 있다.

김 위원장 석방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민주노총의 대정부 투쟁 선포가 없었어도 석방됐을지 현 정권에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만희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불법 폭력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던 민노총 위원장이 6일 만에 법원에 의해 석방된 것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민노총은 결코 국민 위에, 법 위에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문병호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 석방에) 정부·여당의 입김이 개입되진 않았을 것이라 믿고 싶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며 “민주노총은 많은 국민이 왜 민주노총을 이기적이라 비판하는지, 왜 불법 폭력에 신물을 내는지 진지하게 성찰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정의당은 “김 위원장을 구속한 사법처리 절차가 법적인 잣대로 비춰 봐도 졸속적이고 무리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무리한 인신구속을 뒤늦게라도 바로 잡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석방 환영 논평을 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