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은 조건부 석방 하루 뒤인 28일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에 참석했다. ‘투쟁을 구속말라’는 글귀가 쓰인 검정 티셔츠를 입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1일 서울남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발부한 구속영장에 대해 27일 같은 법원 형사합의부가 ‘합당하지 않다’는 판단을 하면서 이날 행사장에 참석할 수 있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오상용)는 김 위원장이 청구한 구속적부심사 사건에서 보증금 1억원 납입을 조건으로 석방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석방 이유로 “이 사건은 형사소송법 제214조의2 제5항 단서 각 호의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른 이유는 적혀 있지 않다.
형사소송법의 해당 조항은 법원이 구속 피의자의 석방을 명할 때의 제한 사유로 ①증거 인멸 염려 ②피해자나 재판 주요 참고인 측에 대해 해를 가할 염려,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재판부는 김 위원장의 증거 인멸 우려가 크지 않고, 피해자 등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도 높지 않다고 본 것이다.
이런 결정이 나오기 6일 전 서울남부지법 김선일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도망의 염려가 있다”며 검찰이 청구한 김 위원장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런데 구속적부심을 맡은 형사합의12부는 도주 우려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 없이 김 위원장 사건이 ①, ② 사항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상반된 결정을 내렸다.
구속된 피의자가 구속적부심 절차를 통해 풀려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통상 폭행을 휘두르거나 남에게 상해를 입힌 피의자가 해당 범죄의 피해자와 합의를 하는 등 특별한 사정변경이 있는 경우에 제한적으로 청구 인용 결정이 나온다.
법원행정처가 발간하는 사법연감을 보면 2017년 전국 법원에서 처리된 구속적부심 사건 2319건 가운데 333명에게만 석방 결정이 내려졌다. 석방률 14.3%에 불과하다. 같은 해 구속영장이 발부된 2만8400명을 기준으로 보면 구속 피의자가 구속적부심 절차를 거쳐 풀려나는 비율은 1%대에 불과하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별다른 사정 변견이 없으면 구속적부심이 인용될 가능성이 아주 낮기 때문에 청구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차라리 기소 이후 재판부가 정해진 뒤 보석을 노리는 게 현실적”이라고 전했다. 2017년 보석 청구 사건(처리 6508건)의 허가율은 35.5%였다.
재판부는 김 위원장의 석방을 명하면서 추가적인 조건을 달았다. 현 주소지에 거주해야 하고, 법원 또는 검사가 지정하는 일시·장소에 출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도망 또는 증거를 인멸해서 안 되며 여행 및 출국 시 사전에 법원·검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도 붙였다. 김 위원장이 이 지정된 조건들을 위반하면 석방이 취소돼 다시 구속될 수 있고, 보증금 1억원 역시 몰수될 수 있다.
김 위원장 석방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민주노총의 대정부 투쟁 선포가 없었어도 석방됐을지 현 정권에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만희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불법 폭력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던 민노총 위원장이 6일 만에 법원에 의해 석방된 것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민노총은 결코 국민 위에, 법 위에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문병호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 석방에) 정부·여당의 입김이 개입되진 않았을 것이라 믿고 싶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며 “민주노총은 많은 국민이 왜 민주노총을 이기적이라 비판하는지, 왜 불법 폭력에 신물을 내는지 진지하게 성찰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정의당은 “김 위원장을 구속한 사법처리 절차가 법적인 잣대로 비춰 봐도 졸속적이고 무리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무리한 인신구속을 뒤늦게라도 바로 잡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석방 환영 논평을 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