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와 아들을 떠나보낸 로자 라미레스(46)는 손녀가 갖고 놀던 장난감을 치우며 울음을 터뜨렸다.
“아들이 미국으로 넘어가겠다고 했을 때 안 좋은 예감이 들었어요.” 로자는 아들 오스카르 알베르토 마르티네스 라미레스(25)가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를 넘겠다고 선언했을 때 수차례 만류했다고 말했다.
두 살짜리 여자아이 발레리아가 지난 24일(현지시간) 아빠 오스카르와 함께 미국에 불법 입국하다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익사한 채 발견됐다. 강가로 떠밀려 온 발레리아의 모습은 4년 전 터키 해변에서 발견된 쿠르디를 연상시켰다. 전세계에서는 ‘미국판 쿠르디’를 향한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로자는 CNN에 이들의 여정이 시작된 이유를 밝혔다. 어린 나이에 결혼한 오스카르는 피자집에서 요리사로 일했고, 아내 타니아 베네사 아발로스(21)는 패스트푸드점에서 근무했다. 적은 임금으로 거처를 마련하기 버거워 이들 가족은 남아메리카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어머니 로자와 함께 살아갔다.
반복되는 일상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 오스카르는 지난 4월 미국으로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로자는 “오스카르는 내 집 마련을 꿈꿨다”고 전했다. 이어 “위험한 여정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며 “엄마로서 이들이 멀리 살기를 원치 않아 만류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오스카르의 결심은 그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로자는 더 가디언에 “아들에게 천천히 결정하자고 설득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오스카르 가족은 지난 4월3일 산살바도르를 떠났다. 이들은 멕시코 남부 국경 타파출라의 이민자 보호소에서 2개월가량 머문 뒤 지난 23일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도착했다.
당시 멕시코의 상황은 급박했다. 지난 5월에만 해도 2000명이 넘는 난민 신청 대기자들이 멕시코와 미국 국경에 줄을 서 있었다. 아내 타니아는 현지 언론에 “기온이 올라가 심각한 더위에 시달리면서 우리 가족의 상황은 절박해졌다”고 설명했다.
기다림에 지친 가족은 결국 리오그란데강을 건너기로 마음먹었다. 리오그란데강은 미국으로 불법 입국을 시도하는 중남비 출신 이민자들의 주요 경로로 활용되고 있다.
딸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너 미국 쪽 강둑에 도착한 오스카르는 멕시코 쪽에 있는 아내를 데려오려고 다시 강물에 들어갔다. 혼자 남겨진 딸이 놀라 아빠를 따라 강에 뛰어들었고, 오스카르는 딸을 붙잡았지만 급류에 휘말리면서 둘은 사망하고 말았다. 타니아는 눈앞에서 남편과 딸이 목숨을 잃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로자는 손녀가 가지고 놀던 원숭이 인형을 안고는 “이 텅 빈 감정을 채워줄 건 없다”고 눈물을 보였다. 오스카르의 아버지 조세 마르티네스는 “아들과 21일(현지시간)에 통화를 했고 문제 될 건 아무것도 없었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박세원 기자 o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