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려진 검찰간부 용퇴 문화, 검찰 개혁 버텨라?

입력 2019-06-27 17:21
봉욱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27일 오전 서울 대검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대검찰청 제공

봉욱(54·사법연수원 19기) 대검찰청 차장이 27일 서울 대검 본관에서 퇴임식을 갖고 26년 검사 생활을 마무리했다. 헌정영상이 상영될 때에는 눈시울을 붉히는 검사들도 있었다. 봉 차장은 “오래된 서류가방 하나를 들고 정들었던 검찰을 떠나려고 한다. 26년 전 아버지께서 선물하신 가방에 초심이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대검 간부들은 봉 차장의 새 출발을 응원하는 의미로 새 서류가방을 선물했다고 한다.

봉 차장은 신임 검찰총장의 최종 후보군 4명에 포함됐었다. 자신보다 후배인 윤석열(59·23기) 서울중앙지검장이 최종 후보자로 지명되자 지난 20일 검찰 내부망에 자필 편지를 올려 사의를 표했다.

문무일(58·18기) 검찰총장의 직속 참모인 그를 시작으로 연수원 19~22기들의 ‘줄사표’가 예상됐지만 그렇지 않다. 봉 차장 이외에 공식적으로 사의를 밝힌 이는 송인택(56·21기) 울산지검장과 김호철(52·20기) 대구고검장 정도다. 검찰 특유의 ‘용퇴 문화’가 흐려진 셈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인사가 너무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줄사표가 사라졌다”는 반응이 흘러나온다. 윤 지검장보다 선배인 한 검사장은 “20~30명씩 다 나가게 된다면 검찰이 너무 망가지지 않겠느냐는 이심전심이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한 차장급 검사는 “종전처럼 다들 옷을 벗는다면 워낙 인사 폭이 커질 것이고, 검사장 일부가 남을 것이라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총장보다 기수가 높더라도 할 일은 해야 한다는 반응도 있다. 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 논의 속에서 선배들이 남아 검찰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수사권 조정안을 강도 높게 비판했던 송 지검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본인은 사의를 표명했으면서도 “주변에서 ‘어떡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제대로 된 검찰개혁이 되게 하고 나오라’고 답한다”고 말했다.

송 검사장은 “수사권 조정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으려는 사람은 남아서 검사장 역할을 다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검찰개혁 관련 법안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문 총장부터가 “민주적 원칙에 부합하지 않고, 기본권 보호에 빈틈이 생길 우려가 있다”는 반대 입장을 밝혔다. 윤웅걸(53·21기) 전주지검장의 ‘검찰개혁론’이라는 글은 검찰 내부망에서 7000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변호사업계가 포화 상태에 이르러 있다는 것을 ‘소극적 용퇴’의 한 요인으로 본다. 2년 전 윤 지검장의 서울중앙지검장 임명 당시에도 검찰엔 줄사표 바람이 불었고,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는 “변호사업계의 생태계가 망가진다”는 농반진반의 말이 돌았다. 다만 한 검사장은 “훌훌 털고 빨리 개업하면 좋을 텐데, 현재의 상황과 맞진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끝나기를 기다린다는 분위기도 있다. 검찰 간부들은 청문회가 끝나면 새 총장이 바로 인사 작업에 돌입할 것으로 본다. 특히 고검장 인사는 새 총장의 취임 직후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일부는 청문회 직후 날짜를 맞춰 거취를 표명할 것으로 보인다. 한 검찰 간부는 “총장으로부터든 법무부로부터든, 몇몇은 ‘불편한 전화’를 받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