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짖지만 물지 않는 개”… 트럼프의 공습 철회로 자신감 얻은 이란

입력 2019-06-27 18: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對)이란 보복 공습을 전격 취소한 이후 이란 측이 더욱 자신감이 붙은 분위기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군사적 옵션’까지 거론하며 강경 발언을 쏟아낸 것과 달리,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본심을 노출했다는 것이다. 미국을 겨냥한 이란의 ‘치고 빠지기’ 외교가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이란의 미군 무인정찰기(드론) 격추를 응징하는 보복 공습을 결정했다가 막판에 마음을 바꿨다. 공습 철회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란 지도부는 미국과의 ‘강 대 강’ 대결이 옳은 선택이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란 정치·경제 전문가 사이드 라이라즈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이란은 압력에 굴해서는 안 된다는 결의를 더욱 다지고 있다”며 “지금까지 이란의 전략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란은 미국의 이란 정책이 짖기만 하고 물지는 못하는 개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미국과 이란 사이의 군사적 긴장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미국은 지난 13일 발생한 오만해 유조선 피격 사건의 책임을 이란에게 돌리며 맹비난했다. 7일 뒤인 지난 20일 이란은 미군 드론이 자국 영공을 침범했다며 대공미사일로 격추했다. 지난해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을 일방적으로 탈퇴한 이후 양측이 벌인 첫 군사적 충돌이었다.

이란은 미군기 격추라는 초강수를 두면서도 치밀하게 수위 조절을 하는 모습도 함께 보였다. 이란은 무인기 인근에 미군 35명이 탑승한 유인 정찰기가 있었지만 그것은 격추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군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경우 군사적 긴장이 극도로 고조돼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공습 시 이란인 사상자가 150여명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보고를 받고 공습 결정을 철회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유인 정찰기를 격추하지 않은 데 대해 “고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소식통은 FT에 “이란은 부당하게 구타당한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려고 했다”며 “기회를 노려 뛰어올라 미국의 뺨을 때려준 뒤 곧바로 다시 피해자의 입장으로 되돌아오는 식”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제재 명단에 올리고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도 제재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바 있다. 하지만 양국 간 긴장 고조와 무관하게 테헤란 시민들 사이에서는 별다른 동요 조짐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고강도 제재가 복원됐음에도 이란 리알화 환율은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이란 기업들도 제재에 적응하고 있다.

정치권 역시 미국의 압박에 맞서 단결하는 분위기다. 개혁파 성향으로 2015년 JCPOA 타결의 주역이었던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연일 대미 강경 발언을 쏟아내면서 과거 정적이었던 보수파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평가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백악관이 ‘정신 장애’에 걸렸다고 비난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과 ‘막말 대결’을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유럽연합(EU)이 미국 제재를 우회해 이란과 직거래를 할 수 있도록 수백만 유로를 투입할 계획이라고 WSJ가 보도했다. 투입 액수 등 구체적인 정보는 오는 28일쯤 공개될 것으로 전해졌다. EU는 트럼프 행정부의 JCPOA 파기 이후에도 이란 핵 합의의 틀을 유지하기 위한 대안 마련에 고심해왔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