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쓴 ‘오싹’ 괴담집 읽어보실래요?

입력 2019-06-27 12:35 수정 2019-06-27 15:10
스마트폰으로 글 쓰는 괴담 작가 문화류씨. 김지훈 기자


글자 수는 25만 6920자. 200자 원고지로는 1625매. 책 2권 분량의 글을 손바닥 크기의 스마트폰 메모장에 다 썼다면 믿어지는가. 6인치 스마트폰 자판으로 글을 쓰는 작가 문화류씨(33·본명 류청경)가 공포괴담집 2권 ‘저승에서 돌아온 남자’와 ‘무조건 모르는 척하세요’(이상 요다)를 냈다. 그를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뿔테안경에 야구 모자를 눌러쓴 그는 ‘순둥이’ 동네 청년 같았다. 어떻게 스마트폰으로 글 쓸 생각을 했냐는 물음에 작가는 “내 글쓰기 방식이 특별한 줄 몰랐다. 다 그렇게 쓰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는 대략 애플에서 아이폰 4G 모델이 나온 2010년부터 휴대전화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야기 생각이 날 때마다 수시로 쓰고 누워서 쓸 때도 많다.

작가 문화류씨의 괴담집 ‘저승에서 돌아온 남자’와 ‘무조건 모르는 척하세요’. 요다 제공


“나는 핸드폰을 두 손에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글 쓰는 게 제일 편하다. 집중해서 쓸 때 3시간 동안 200자 원고지 40~50매를 쓴다. 컴퓨터 자판은 퇴고할 때만 간혹 사용하는데 조금 오래 컴퓨터 자판을 치면 오히려 어깨가 아프다. 핸드폰에 쓰는 데 워낙 익숙해져서 그런 거 같다”고 했다. 스마트폰 자판으로 쓴 이야기는 어떻게 다를까.
언뜻 봐서는 그 차이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스마트폰으로 쓴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일단 문장이 짧은 게 눈에 띈다. 20자 넘는 문장이 많지 않다. 단락이나 인용문 사이에 여백도 많다.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이야기는 기이하거나 무섭다. 언제 어디에선가 들었을 법한 기담이나 괴담에 상상력이 더해져 있다. 신비하면서 오싹한 재미가 있다.
이 많은 이야기를 어디에서 수집했을까.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는데 어릴 때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래 사셨다. 할머니의 입담이 참 좋았다. 동네가 누가 갑자기 죽으면 귀신이 붙어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해주곤 하셨다. 난 이상하게 그런 얘기에 매료됐다”고 했다. 두 작품집에 각각 실린 9편과 21편의 얘기는 작가가 할머니나 주변에서 들은 얘기가 모티브가 된 경우가 많다.

핸드폰을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글을 쓰는 게 제일 편하다는 문화류씨. 김지훈 기자



그는 20대 중반까지 뭔가에 도전해본 일이 거의 없었다. “고등학교 때 성적에 맞춰서 문화콘텐츠 관련 학과에 입학하긴 했는데 첫 학기 모든 과목에서 F학점을 받았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늘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냥 ‘태어난 김에 산다’는 마음으로 대충 살았다. 그러다 2010년 처음으로 공모전에 글을 냈는데 운 좋게 상을 받았다.”
그는 NHN이 연 제1회 게임문학상에 입상했다. 그 후 모든 게 달라졌다. 이듬해 경남스토리텔링공모전에서도 상을 받았다. 이런 경력으로 2013년부터 게임회사에 시나리오 작가로 입사해 일했고 이후 문화콘텐츠 관련 일을 하면서 인터넷 게시판에 지속적으로 글을 올렸다. 그러다 지난해 연말 출판기획자이자 작가인 김민섭씨의 눈에 띄어 이번에 생애 첫 책까지 내게 됐다.
김씨는 주물공장에서 일하며 글을 쓰던 김동식 작가를 발굴해내기도 했다. 김 작가의 작품이 공상과학(SF) 요소가 강한 시사적 장르물이라면 문화류씨의 작품은 휴머니즘이 깃든 한국적 기담이다.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구분에 대해 “사람들은 작품을 읽을 때 그런 구분 없이 그냥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않냐. 독자들이 내 작품을 재미있게 읽고 자유롭게 해석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