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남구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300억원대의 위탁 개발사업비 부담 주체를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남구는 감사원 감사결과에 불복해 이례적으로 재심의를 신청하기로 했다.
남구는 27일 “청사 개발사업비 상환 책임이 전적으로 남구에 있다는 감사원 결과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남구는 “임대 활성화와 공실률 최소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캠코의 책임에 대해 아무 언급이 없었다는 점에서 감사원에 재심의를 요구하겠다”고 강조했다.
김병내 남구청장은 전날 기자회견을 갖고 “긁어 부스럼이라는 우려에도 공익감사를 신청한 것은 상환 계획을 수립하라는 캠코의 공문을 여러 차례 받았기 때문”이라며 “아무 반박을 하지 않으면 남구의 상환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어 불가피하게 감사를 신청하게 된 것”이라고 감사청구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위탁개발사업계획서에 캠코도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위험 부담의 책임이 있다”고 분명히 명시됐다고 덧붙였다. 임대료 하락과 공실률, 관리비용 증가 등에 대한 귀책사유가 캠코 측에도 있다는 것이다.
김 구청장은 이날 “고문변호사 자문을 거쳐 채무부존재 확인소송 등 법적 대응에 들어가겠다”며 “다음달 캠코를 방문해 임대사업 정상화에 함께 노력할 것을 촉구하고 남구의회와도 활성화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감사원 재심의는 1개월 내 제기하도록 규정돼 있어 남구는 다음 주 재심의 신청서를 발송할 예정이다.
감사원은 지난 24일 남구와 준정부기관인 캠코가 공방을 벌여온 ‘청사 리모델링 비용 부담’ 문제에 대해 캠코 측의 손을 들어줬다. 남구청에 책임이 있다는 결과를 감사원이 내놓자 남구민들은 ‘청천벽력’이라며 어리둥절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남구와 캠코가 전면적 공방에 나선 표면적 발단은 감사원의 ‘광주 남구 종합청사 개발사업 공익감사’ 발표다. 하지만 두 기관에게 개발사업비를 누가 떠안느냐하는 것은 이미 수년전부터 수십차례 공문을 주고받으며 샅바싸움을 계속해온 ‘뜨거운 감자’였다.
남구는 민선 6기 시절인 2011년 5월 봉선로에 위치한 당시 옛 화니백화점 건물을 124억원에 사들였다. 지하 6층, 지상 9층 규모의 이 건물은 옛 화니백화점 부도 이후 10년 넘게 흉물로 방치된 상태였다.
남구는 이 과정에서 위탁계약을 통해 캠코가 320억원을 들여 청사 전체를 리모델링하도록 하는 대신 지하 1층~지상 4층 노른자위 공간의 22년간 장기 임대권을 넘겨줬다. 상가 임대료를 받아 캠코가 투자한 개발사업비를 20여년에 걸쳐 회수하도록 한 것이다.
캠코가 지자체 보유 토지와 건물에 개발사업비를 투자해 리모델링한 뒤 조달자금을 회수하는 이른바 ‘공유재산 위탁개발’ 방식이다.
이후 현행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에 따라 캠코는 임대 수익을 우선 남구에 납부하고, 남구는 이 수익금으로 리모델링 비용을 상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캠코가 임대권을 행사하는 남구청사 해당 층에는 유통업체와 가구백화점 등이 이미 입주했고 나머지는 남구와 남구의회, 보건소 등의 청사로 현재 사용 중이다.
하지만 위탁 첫해인 2013년부터 임대 수익이 저조하고 공실이 늘면서 두 기관의 남모를 신경전이 시작됐다. 건물은 시세보다 싼 가격에 사들였지만 인근 백운고가 철거작업이 연기되고 백운광장 상권 형성이 더디게 이뤄지면서 개발사업비 환수가 예상보다 난항을 겪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 감사원은 “최영호 전 남구청장 등 상급자들이 사업구조와 상환책임 등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고 지방의회 의결도 거치지 않은 채 사업을 추진하도록 결재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당시 관련 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한 관련 직원 4명에 대해 징계(경징계 이상) 또는 주의를 요구하라고 남구청장에게 통보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남구는 ‘임대사업 수익으로 리모델링 비용을 캠코가 자체 충당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민선 6기를 이끈 최영호 전 남구청장 역시 감사원 감사결과 발표 직후인 25일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감사원의 어이없는 결정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한다”고 반발했다.
최 전 청장은 “남구청사의 위탁계약은 계약서에 명시한대로 남구의 별도 재정 투입 없이 22년간 임대사업 수익으로 원금과 이자를 회수하는 조건이었다”며 “감사결과에 따른다 할지라도 실제 남구가 져야하는 재정부담은 5년간의 특약기간을 더해 위탁계약이 최종적으로 완료되는 2039년에 발생한다”고 밝혔다.
당초 남구와 캠코는 계약기간(22년)이 끝나도 원활한 개발사업비 회수를 위해 5년 이내 기간을 추가 연장할 수 있다고 합의한 바 있다.
남구민들은 “남구의 재정 부담을 가중시킨 전임 청장에 대해 업무상배임혐의로 고발하겠다”며 강경한 대응을 예고하고 나섰다. 시민단체 소속 박모씨는 25일 자신의 SNS에서 “전임 청장은 개발사업비 상환책임이 남구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2016년에도 담당 과장이 상환책임이 남구에 있다고 보고했지만 ‘변호사 자문이 있었다’며 이를 묵살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남구의 재정 부담을 가중시킨 전임 구청장에 대해 업무상배임혐의로 고발하고자 하오니 남구 구민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남구의 공세에 대해 캠코는 그동안 이자 등을 포함해 368억원으로 늘어난 개발사업비를 원만히 회수하고 청사 입주상인 등과 상생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왔으나 공실이 줄지 않아 손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됐다고 맞서고 있다.
캠코는 계약 체결 당시 임대차 손실과 계약 파기에 따른 책임은 남구가 합당한 재원을 마련하기로 했다는 주장이다.
두 기관은 법적 소송절차라는 ‘마지막 카드’를 손에 쥐고 있지만 묘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제기된다. 그동안 광주지역의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개발사업비와 금융비용 등을 포함해 500억원도 되지 않는 전체 투자금에 비해 현재 거래시세는 1000억원을 훨씬 웃도는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남구 관계자는 “캠코와 시각차를 좁히기 위해 다시 만날 것”이라며 “남구민들에게 재정 부담이 가지 않도록 원만한 해결책을 찾겠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