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美 적대행위 가증스러워” 文 북유럽 메시지엔 “어처구니없는 발언”

입력 2019-06-27 11:28

북한이 미국이 대화를 운운하면서 실제로는 적대행위를 하고 있다며 연일 대미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남측을 향한 불만도 직설적으로 표출했다. 특히 대남선전매체를 통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북유럽 순방 중 대화 촉구 메시지를 ‘어처구니 없는 발언’이라고 힐난했다.

북한은 27일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 명의 담화를 내고 “최근 미국이 말로는 조미(북·미) 대화를 운운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우리를 반대하는 적대행위들을 그 어느 때보다 가증스럽게 감행하고 있다”며 “미국이 쌍방의 이해관계에 다같이 부합되는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할 생각은 하지 않고 대화 재개를 앵무새처럼 외워댄다고 하여 조미 대화가 저절로 열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권 국장은 북·미 비핵화 협상 시한을 연말로 정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언급하며 “미국이 올바른 셈법을 가지고 나와야 하며, 그 시한부는 연말까지”라고 주장했다. 특히 “미국이 지금처럼 팔짱을 끼고 앉아있을 작정이라면 시간이 충분할지는 몰라도 결과물을 내기 위해 움직이자면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지는 못할 것”이라며 “미국은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가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 국장은 이어 “대화를 하자고 하여도 협상 자세가 제대로 되어있어야 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과 협상을 해야 하며 온전한 대안을 가지고 나와야 협상도 열릴 수 있다”며 사실상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협상 배제 혹은 교체를 요구했다.

북한은 남측을 향해서도 강도 높은 비판을 여과없이 쏟아냈다. 한국 정부의 ‘중재자 역할론’도 강하게 부정하며, 북·미 간 협상에 한국 정부가 낄 자리가 없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면 ‘남한 패싱’을 하겠다는 경고성 발언으로 해석된다.

권 국장은 “조미 관계를 중재하는 듯이 여론화하면서 몸값을 올려보려 하는 남조선당국자들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다. 지금 남조선당국자들은 저들도 한판 끼여 무엇인가 크게 하고 있는 듯한 냄새를 피우면서 제 설 자리를 찾아보려고 북남사이에도 여전히 다양한 경로로 그 무슨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듯한 여론을 내돌리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조미 대화의 당사자는 말 그대로 우리와 미국이며, 조미 적대관계의 발생근원으로 보아도 남조선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라며 “우리가 미국에 연락할 것이 있으면 조미 사이에 이미 전부터 가동되고 있는 연락통로를 이용하면 되는 것이고 협상을 해도 조미가 직접 마주 앉아 하게 되는 것 만큼 남조선당국을 통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조선당국자들이 지금 북남사이에도 그 무슨 다양한 교류와 물밑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광고하고 있는데 그런 것은 하나도 없다. 남조선당국은 제집의 일이나 똑바로 챙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북한은 또 이날 대남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문 대통령의 이달 중순 북유럽 순방 중에 내놓은 메시지에 대해서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매체는 “얼마 전 남조선당국자가 북유럽을 행각하는 과정에 이러저러한 동에 닿지 않는 소리를 늘어놓으면서 북남관계, 조미관계가 교착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마치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여론을 오도했다”며 “우리 겨레는 물론이고 공정한 국제여론은 지금 사이비 언론도 아니고 다름 아닌 역사적인 북남선언들에 직접 서명을 한 남조선당국자의 입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나온데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문 대통령을 비난한 셈이다.

매체는 또 “우리 공화국에 대한 극히 엄중한 도발적 행위들이 계속 자행되는 속에서도 우리가 최대한의 자제력을 발휘하며 여러가지 선의와 아량을 다 보여주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남조선당국도 모르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는 현 사태를 놓고 진짜 책임을 느껴야 할 당사자는 다름 아닌 남조선당국”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북한의 이런 원색적 비난이 협상판을 깨려는 의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대미·대남 비판 메시지를 외무성 국장급 명의로 낸 데다, 문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공식매체가 아닌 선전매체를 동원했기 때문이다. 한·미 양측에 경고성 발언을 쏟아내긴 했지만 북한 나름대로 수위조절은 한 셈이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