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졌다시피 장강명은 기자 출신 소설가다. 일간지에서 11년간 기자로 일하다가 소설가로 진로를 틀었다. 언론사에 다니기 전에는 건설 회사에서 일했고, 대학에서는 도시공학을 전공했다. 문단에서 이 같은 이력은 분명 희귀한 것이니 한국문학의 이단아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그의 신작 ‘산 자들’을 소개하기에 앞서 이렇듯 작가의 이력부터 기다랗게 늘어놓은 이유는 ‘장강명 문학’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는 누구보다 꼼꼼한 취재로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여 소설을 만든다. 한국사회의 이면을 포착해 리얼하게 그려낸다. 장강명은 직장인이 그렇듯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매일 8시간씩 일(글쓰기)에 할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장인으로, 그리고 기자로 살았던 삶이 그의 작품 활동에도 그대로 묻어나는 셈이다.
그렇다면 신작에서 선보이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산 자들’은 어쩌면 장강명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작품들로 채워진 연작소설일 수도 있겠다. 2015년부터 최근까지 각종 문예지에 발표한 단편 10편을 묶었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이 책은 소설로 풀어쓴 ‘대한민국 노동시장 백태’다. 책장을 넘기고 있노라면 청춘들이 마주하는 지난한 취업 과정, 직장에 간당간당 매달려 살아가는 노동자의 일상, 이문을 좇는 데 몰두하는 사용자의 마음, 구멍이 숭숭 뚫린 한국사회 안전망을 각각 선명하게 드러낸 작품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신작의 들머리를 장식하는 ‘알바생 자르기’부터 살펴보자.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은영은 아르바이트생 혜미를 탐탁잖게 여긴다. 혜미의 근태가 엉망이고 알바생 답지 않게 싹싹하지 못하다고 깎아내린다. 쉽게 말하자면 을(乙)이 을처럼 굴지 않아서 고깝다는 거다.
결국 은영은 간부에게 혜미를 해고하자고 제안하고 실행에 옮긴다. 문제는 이후 혜미의 반격이 시작됐다는 것. 법령과 달리 해고 통보를 서면으로 미리 하지 않았다고, 퇴직금을 줘야 한다고, 재직하는 동안 4대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았다고 은영을 몰아세운다. 장강명은 갑과 을이 충돌하는 이런 현장을 통해 그 밑에 깔린 사람들의 심리를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이번 작품집에서 ‘베스트’를 꼽으라면 독자마다 다른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 정리해고 문제를 다룬 ‘공장 밖에서’는 물고 물리는 노동의 현장을 그려낸 수작이고, ‘현수동 빵집 삼국지’는 동네 빵집의 무한 경쟁을 통해 야멸찬 자본주의의 실상을 들려주는 소설이다. 취업 분투기를 다룬 ‘카메라 테스트’나 스펙 쌓기의 달인을 내세운 ‘대외 활동의 신’도 인상적이다.
전작들이 그랬듯 장강명 소설 특유의 속도감은 신작에서도 여전하다. 소설마다 얼마간 형식을 달리하면서 진부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는 노력도 느낄 수 있다.
특히 어느 부부의 “소소하게 운 없었던 날”을 그려낸 ‘모두, 친절하다’ 같은 작품은 장강명의 입담을 실감케 만든다. 부부는 컴퓨터 서비스센터 노동자, 택배 기사, 이사업체 직원을 상대하면서 짜증나는 일을 계속 맞닥뜨리는데 누구 하나 책임자가 아니어서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황이다. 가뜩이나 이들이 마주하는 사람들은 소설 제목처럼 하나같이 친절하다. 소설은 잘게 쪼개진 분업의 메커니즘이 책임을 다른 누군가에게 떠넘기게 만드는 과정을 그려내는데, 이 같은 부조리를 이토록 신랄하게 그려낸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살풍경을 담아냈다고나 할까.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작가의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매일 이야기하는 한낮의 노동과 경제 문제들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부조리하고 비인간적인 장면들을 단순히 전시하기보다는 왜, 어떻게, 그런 현장이 빚어졌는지를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공감 없는 이해는 자주 잔인해지고, 이해가 결여된 공감은 종종 공허해집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