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미술계에 따르면 감정평가원의 1, 2대 주주인 송향선(가람화랑 대표) 임명석(우림화랑 대표)씨가 주축이 된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이하 감정연구센터)가 지난 3월 출범했다. 감정연구센터 공동대표를 맡은 정준모(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이호숙(전 서울옥션 스페셜리스트)씨는 지난 18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3월부터 매주 두 차례 감정을 해오고 있다. 앞으로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미술품의 시가를 판정하는 시가 감정에 중점을 둘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감정평가원은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고 전하면서 “감정연구센터는 감정평가원과 별개의 회사”라고 강조했다.
감정평가원의 3대 주주인 엄중구씨(샘터화랑 대표)는 “지난해 9월 주총에서 감정평가원 해산을 만장일치로 결의한 것은 공익성을 강화하기 위해 감정 업무를 (사)한국미술품감정협회(이하 감정협회)로 일원화하기 위해서였다”고 반발했다. 그는 “영리 목적의 주식회사는 청산하기로 했는데, 엉뚱한 영리회사가 설립되다니 말이 되느냐”고 토로했다. 지난 3월 주총에서 감정평가원의 법적 청산인으로 임명석씨로 결정이 된 데 따라 잔류파인 엄씨는 지난 5월 청산인해임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화랑협회는 1981년부터 감정 업무를 진행해왔다. 그러다 가람화랑 송 대표가 주축이 돼 2003년 (사)감정협회를 낸 데 이어 2007년부터 영리성을 강화하기 위한 ㈜감정평가원을 설립했다. 2007년부터는 화랑협회와 감정평가원이 함께 업무제휴를 해서 공동명의로 감정서를 발급해왔다. 파트너였던 감정평가원의 대주주들이 감정연구센터를 차려서 독자 행보를 함에 따라 화랑협회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화랑협회는 체제를 정비해 8월부터 독자적으로 감정 업무를 개시한다는 계획이다.
감정평가원 해산 이후의 행보가 엇갈리는 것은 미술품 감정 업무가 수익이 나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엄 대표는 “건당 40만원(생존작가), 60만원(작고작가)을 돈을 받고 하지만 감정위원들의 거마비를 주고 나면 별로 남는 것도 없다. 작고 작가의 감정 비중이 큰 데 웬만한 작고 작가의 작품에 대한 감정은 거의 끝나 수요도 고갈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사)감정협회의 핵심 사업인 차세대 감정 인력 교육사업이 영리회사와 연관된다는 이유로 문화체육관광부 지원금이 끊긴 것이 해산을 결의한 주요 동기였던 것으로 분석이 된다.
잔류파는 공익을 목적으로 한 사업으로, 신생 회사파는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한 신시장 창출에 무게를 두고 각각 다른 행보를 보인 것으로 분석이 된다.
문제는 감정평가원이 진행해온 수천 건의 미술품감정서와 관련한 데이터베이스의 승계 여부다. 신생 ㈜감정연구센터 이호숙 대표는 24일 “감정평가원과는 다른 회사여서 기존 감정서의 승계는 없다. 도의적인 책임은 지고 싶으나 그럴 권한도 없다”고 말했다.
화랑협회 최웅철 회장은 “지난 12년간 감정평가원에 인력을 파견해 공동으로 감정 업무를 해온 만큼 우리도 지분이 있다”며 “기존에 발급된 감정서와 관련 데이터에 대한 가처분금지신청을 법원에 냈다”고 말했다. 그는 “미술품감정서가 유출돼 위조되면 그 책임은 누가 지겠느냐”고 우려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