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나친 사우디아라비아 사랑에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에서도 반발이 나왔다. 미국 상원은 의회 승인 없이 사우디에 무기를 수출할 수 없도록 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 왕실이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비판을 받는 와중에도 사우디 무기 수출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은 20일(현지시간) 본회의를 열고 사우디 무기 거래 저지 결의안을 찬성 53대 반대 45로 통과시켰다고 의회 전문매체 더 힐이 보도했다. 상원은 공화당이 53석, 민주당이 47석을 차지하고 있다. 공화당 내에서 적지 않은 반란표가 나온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결의안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져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20건의 무기거래 저지 결의안도 찬성 51대 반대 45로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의회에서 제동이 걸린 총 22건의 무기거래는 약 81억 달러(약 9조5700억원) 규모로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 요르단 등이 그 대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사우디 무기 판매를 고집해 왔다. 의회가 무기 판매를 반대하자 비상상황에 한해 의회에 30일간 검토 기간을 주지 않고 정부가 무기 판매를 승인할 수 있는 무기수출통제법 조항을 적용하겠다고 통보했다. 이란의 위협을 비상상황으로 규정한 것이다.
의회도 물러나지 않았다. 대통령이 무기수출통제법상 비상 조항을 적용해 이미 승인한 거래를 뒤집기 위한 목적의 결의안 제출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만큼 미국과 사우디간 관계에 대한 의회 내 불만 기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더 힐은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의회는 지난해부터 사우디 무기수출 문제로 마찰을 빚었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카슈끄지가 지난해 10월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살해당하면서다. 사우디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살해 배후라는 증거가 쏟아졌다. 미국 내에서는 부도덕한 사우디 정부에 무기를 판매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우디가 주도한 예멘 내전에서 아이들이 탑승한 버스가 폭격을 받는 등 참사가 반복된 것도 무기 판매 중단 여론에 불을 붙였다.
사우디는 서방세계로부터 천문학적인 규모의 무기를 사들이는 큰 손이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 정부도 사우디 무기 수출과 관련해 비슷한 딜레마에 빠졌다. 영국 항소법원은 20일 영국 정부의 사우디 무기 수출이 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사우디에 수출한 무기가 예멘 내전에서 민간인 사상자를 발생시킬 가능성을 정부가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5년 3월 예멘 내전이 발생한 뒤로 영국은 사우디에 최소 47억 파운드(약 7조원) 어치의 무기를 판매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