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마약, 도박, 알코올 등 불변하는 본질을 가진 것들과 동일하게 다룰 경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헌적인 규제들을 양산하거나 고착화할 수 있습니다.”
21일 서울 강남구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엔스페이스에서 진행된 학술세미나에서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게임은 표현의 자유의 영역에 포함되어 그 상호성 때문에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가 혼재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박 교수는 “게임 과몰입이 과연 다른 과몰입 행위와 비교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더 강한 생활파괴를 불러일으키는가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면서 “게임이 가지는 긍정적인 효과도 감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표현의 결과는 상대적이다. 말하는 사람이 있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한 사람의 자유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는 한 보호되어야 한다는 ‘해학이론’이 있다. 게임은 개발자가 게임을 만들고 이용자가 소비하는데, 표현의 자유로서 보호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게임이 표현의 자유를 갖는 근거로 헌법재판소의 지난 2002년 2월 28일 판시(99헌바117)를 예로 들었다. 당시 헌재는 ‘게임물은 예술표현의 수단이 될 수도 있으므로 그 제작 및 판매 배포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제21조 제1항에 의하여 보장을 받는다’고 판단했다.
박 교수는 강제적 셧다운제 합헌 결정의 경우 청소년의 일반적 행동의 자유권에 국한해 다뤄졌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표현의 자유’가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셧다운제’는 수면권 등을 이유로 16세 미만 청소년이 오전 0시부터 6시까지 온라인 게임을 이용할 수 없도록 한 제도다. 박 교수는 “게임 이용자는 게임을 도구로 하여 표현을 하기도 한다. 표현의 자유의 측면에서도 논의되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음란물 규제를 예시로 들며 “음란물과 달리 게임은 실제로 이용자에게 발생시키는 해악의 명백성, 현존성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다른 예시로 2011년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이 폭력적 비디오게임을 청소년에게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한 판결을 소개했다. 박 교수는 “법원은 게임 금지가 강력한 공익을 성취하기 위해 불수불가결한 법률인지 엄격히 따졌다. 상관관계는 있지만 인과관계는 없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며 위헌결정을 내렸다. ‘명백한 해악’이 없었다고 인정한 셈이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세상에서 많은 중독이 있다. 만화 중독, 공부 중독, 성 행위 중독, 독서 중독, 일 중독, 심지어 게임이용장애 발의를 계속해서 주장하는 것도 중독이 있을 수 있다. 사람의 어떤 활동이 도파민을 분비시키냐에 따라 어떤 것이든 과몰입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했다.
또한 “게임에 대한 지금의 규제가 너무 강압적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질병코드 등록은 이후 다수의 게임 규제의 발단이 되지 않을까 우려가 나온다. 국내에는 입시, 산행, 낚시, 쇼핑 같은 강력한 몰입 행위들이 있다. 과연 게임에만 질병코드를 부여할 정당성이 있는지 의문이다”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쇼핑중독의 원인이 쇼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중독의 원인은 중독의 대상물이 아니고, 관계의 단절에 있다”면서 “그런데 게임을 질병코드로 등록해 대증치료를 하겠다는 것인데, 사실은 질병코드 등록 자체보다 이후 후속조치를 잘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약은 단 1회만 투여해도 불법이다. 도박도 마찬가지이고, 술 역시 청소년에게 단 1회만 제공해도 불법이다. 이들은 명백하게 현존하는 위험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이어 “게임 질병코드 등록은 이후 강력한 후속조치로 이어질 수 있다. 게임규제에 대한 헌법소송에서 ‘인터넷 게임은 중독관리에 관한 법에서 4대 중독의 하나로 지정할 만큼 해당 게임규제는 정당하다’는 판시가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