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델타항공이 한진칼 지분 4.3%를 매입했다. 대한항공과 협력관계를 맺어왔던 델타항공이 깜짝 지분 매입에 나서자 한진그룹 경영권 확보에 ‘파란불’이 켜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델타항공은 20일(현지시간)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대한항공 대주주인 한진칼 지분 4.3%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어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은 뒤 지분을 10%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델타항공의 이번 투자 결정에는 대한항공과의 조인트벤처(합작회사)를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깔려있다. 에드워드 바스티안 델타항공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투자는 조인트벤처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 대한항공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그룹은 반기는 분위기다. 델타항공의 지분 매입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델타항공이 조인트벤처 파트너사인 대한항공의 경영권 안정을 위해 한진칼 지분을 매입한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현재 한진칼 지분은 고 조양호 전 회장과 조 회장 등 오너일가와 특수관계인 지분이 28.93%로 가장 많다. 다만 조 전 회장의 지분(17.84%)만 놓고 보면 2대 주주인 KCGI(15.98%)와의 지분 격차가 2%포인트 내로 좁혀진 상태다.
그동안 행동주의펀드 KCGI(강성부펀드)는 한진 오너일가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여왔다. 꾸준히 지분을 늘린 데 이어 이달 초에는 조 전 회장에게 지급된 퇴직금과 조 회장의 선임과정을 문제 삼으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증권가에서는 KCGI가 한진칼 지분을 20%까지 늘리며 견제를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델타항공이 등장하면서 조 회장 측은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델타항공이 조 회장의 우호지분이라고 밝히진 않았지만, 대한항공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에서 조 회장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낮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게다가 KCGI는 최근 투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KCGI는 한진칼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다시 한진칼 주식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지분율을 늘려왔는데, 최근 미래에셋대우가 KCGI의 한진칼 주식 담보 대출 연장을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조 회장 측이 완전히 승기를 잡은 건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KB증권 강성진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를 내고 “델타항공의 한진칼 지분 취득으로 조 회장 측이 KCGI와의 지분 경쟁에서 좀 더 유리해졌으나, 승리를 확정지었다고 볼 수는 없다”며 “여전히 소액주주의 지분이 많아 KCGI 측도 추가 지분 취득을 통한 반격이 가능하고, 기타 변수들도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델타항공의 지분 매입 소식에 코스피시장에서 한진칼은 약세를 보였다. 이날 한진칼은 전 거래일보다 15.1% 내린 3만43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임주언 오주환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