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에 시달릴 수 있다” 자사고 평가위원 비공개 ‘시끌’

입력 2019-06-21 10:14 수정 2019-06-21 10:37


교육 당국이 자율형사립고 이른바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진행하면서 평가위원을 공개하지 않았다. 평가위원들이 ‘민원’에 시달릴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에 자사고와 자사고 학부모들은 투명하지 않은 평가를 믿을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20일 안산 동산고 평가결과를 발표하며 “재지정 기준점인 70점에 미달하는 점수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확히 몇 점을 받았고 어떤 부분에서 감점됐는지 등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평가위원에 대해서도 “내외부 전문가”라고만 밝혔다.

전주 상산고를 평가한 전북도교육청도 같은 날 “19일 ‘전라북도 자율학교 등 지정·운영위원회’를 열어 전주 상산고를 심의한 결과, 79.61점을 얻어 자사고 지정 취소 기준점인 80점에 미달했다”며 “자사고 지정 목적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해 자사고 지정 취소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북은 17개 시도교육청 중 유일하게 기준점을 80점으로 설정해 다른 시도교육청보다 10점 높다. 평가 결과 상산고는 80점이 0.39 모자란 79.61점을 받았다. 주요 감점 요인으로는 감사 지적 및 규정 위반 사례로 인해 5점, 사회통합 전형 대상자 선발에서 2.4점, 입학전형 운영의 적정성 1.6점, 학교 1인당 교육비의 적정성 1.6점, 교비회계 운영의 적정성에서 1.2점이 감점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삼옥 상산고 교장은 즉각 반발했다. 박 교장은 “전북만 자사고 재지정 평가 기준점을 교육부 권고안(70점)보다 높은 80점으로 정한 것은 형평성‧공정성에 어긋나는 부당한 일”이라며 “지정 취소 처분이 내려진다면 행정소송‧효력 정지 가처분신청 등 모든 법적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도교육청은 구체적인 점수까지 밝혔지만 누가 평가를 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도 다음 달 초 평가결과를 공개하면서 평가위원은 공개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평가위원이 공개되면 ‘민원’에 시달릴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 자사고 운영평가 계획에는 평가위원에 대해 ‘공정하고 편향적이지 않으며 학교 실정에 정통한 전문가를 중심으로 구성한다’고 명시돼 있다. 자사고와 자사고 학부모들은 “평가위원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제대로 위원이 구성됐는지 검증할 방법이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자사고에서 탈락한 상산고 학부모들은 도교육청 앞에서 상복을 의미하는 검은색 옷을 입고 “교육감은 우리 학교(상산고)를 살려내라”며 집단 항의했다.

자사고는 2001년 김대중 정부 시절 만들어진 ‘자립형사립고’에서 비롯됐다. 학교별로 다양하고 개성 있는 교육 과정을 실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립고등학교를 뜻한다. 자사고는 학사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 지원 없이 등록금과 재단전입금만으로 운영된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역점 사업으로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2014년 49곳까지 늘어났었다. 이후 5년 단위로 평가를 받아 재지정되거나 지정이 취소되면서 현재 자사고는 42곳으로 축소됐다.

그러나 당초 취지와는 달리 자사고가 우수 학생을 선점하고 고교 서열화를 야기하면서 자사고 입학을 위한 사교육이 팽창하는 부작용이 생겼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로 인해 문재인 정부는 자사고 폐지를 국정과제 중 하나로 삼았다. 외고·국제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일반고와 입시 동시 실시를 공교육 혁신의 기치로 내걸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