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사회에 살고 있다. 모르는 사람의 ‘묻지마 폭행’에서부터 이웃, 직장, 학교, 가족까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분노 현상은 점차 연령이 낮아지는 추세이다. 어린 아이들조차도 화를 참지 못하고 폭언이나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를 허다하다.
특히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선생님과 또래들과의 갈등으로 분노를 심각하게 표출하는 사건들이 매체를 통해 보도될 때 혹시 우리 아이도 분노 조절 장애가 아닐까 하고 병원을 방문 하는 학부모들이 많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나, 불합리한 상황에서 침착하고 우아하게 넘기기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아이들인 경우 더욱 그러하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분노를 통제, 조절하는데 어려움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분노 조절장애가 있다고 말을 한다. 흔히 말하는 분노 조절장애는 공식적인 정신과 진단명은 아니다. 분노 조절장애는 정신장애진단 및 통계편람(DSM-5)에서 간헐적 폭발장애(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에 해당된다. 공격적 충동조절에서의 어려움으로 언어적 공격성, 신체적 공격성, 재산의 파괴 등을 보인다.
K는 초등학교 3학년 남자 아이다. 형과 다툼이 있을 때 화를 참지 못하고 폭언에 공격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최근에는 할아버지가 싸움을 말리는 과정에서 할아버지한테 칼을 휘두르고, 뛰어내리겠다고 해서 병원을 찾았다. 놀이터에서도 쉽게 짜증을 내고 공격적인 행동을 자주 보인다. 부모는 지금 이런 현상을 보이는 아이가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나이가 들어서 분노를 참지 못하고 뉴스에서 나오는 일들을 저지를까봐 불안했다.
우선 아이가 분노를 과도하게 표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질적인 문제, 가족관계 및 의사소통, 학교 문제 등에 대해 다각적인 평가가 이루어졌다. K는 기질이 온순하고 순응적인 형과 늘 비교가 되었다. 이로인해 자신이 굉장히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을 있을 그대로 받아주지 않고 “형처럼 할 수 없니?”라는 말에 화가 나고 그럴 때 마다 더 비뚤게 행동을 했다. 평가 결과 ADHD 약물치료를 병행하고 부모 자녀 관계가 개선이 되면 아이의 조절능력도 향상될 수 있었다.
부모 교육을 통해 아이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와 아이 마음을 읽어주는 훈련을 했다. K는 자신의 행동에 혼은 나지만 부모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자 부모와 형한테 사과를 하기도 했다. 또한 화가 났을 때 적절하게 자기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연습을 통해 행동을 언어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부모, 할아버지, 형과도 조금씩 관계가 좋아지고 있다. K도 지금은 싸울 일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사소한 일에 과도하게 분노를 표출하는 아이들의 원인은 다양하다. 그 출발점은 상처받은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다. 또한 분노를 다스리고 통제하는 것은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이제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특히 이기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고려한다면 조금은 더 행복한 학교,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또한 분노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