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반 송환법’ 시위, 이번엔 200만명이 쏟아져 나왔다…캐리 람, 밤중 사과 성명 ‘백기’

입력 2019-06-17 10:49
홍콩 시내를 가득 메운 시위대 물결.scmp 캡처

일요일인 16일 홍콩에서 펼쳐진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에 200만명의 시민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됐다. 700만 명인 홍콩 인구의 30% 가량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시위대가 200만명을 넘어서자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결국 “시민들을 실망시키고 괴롭게 했다”는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강경일변도의 태도를 보이던 캐리 람은 ‘100만 명 시위’에 송환법 보류를 발표하고, ‘200만명 시위’에 공개 사과를 해야 했다. 수그러들지 않는 홍콩 시민들의 분노에 ‘백기’를 든 셈이다.

17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홍콩 재야단체 연합인 ‘시민인권전선’은 16일 밤 11시 시위에 참여한 시민이 200만 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9일 시위에 참여한 103만 명의 두 배에 이르는 숫자이며, 홍콩 시민 10명 중 3명 가량이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그러나 시위 참여 인원이 33만8000명이라고 추산했으며, 앞서 9일 100만명 시위 때는 24만명으로 집계했었다.

이날 시민들은 오후 2시30분쯤 빅토리아파크에서 모인 뒤 홍콩의 정부 청사가 있는 애드머럴티 인근으로 ‘검은 대행진’을 벌이며 송환법 완전 철폐와 캐리 람 장관의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시민들은 이날 밤 10시까지 가두행진을 벌인 뒤 자진해산했다. 일부 시민들이 남아 길거리 곳곳에서 연좌 농성 등을 벌였지만 시민들은 길거리에 있는 쓰레기 등을 깨끗이 치운 뒤 10시에 공식적인 시위를 마쳤다고 SCMP는 전했다.

캐리 람 장관은 시위대의 검은 물결이 홍콩 시내를 가득 메우자 밤 8시30분 성명을 내고 시민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람 장관은 “정부 업무 추진에 부족함에 있었다 홍콩 사회에 많은 갈등과 분쟁을 야기하고, 많은 시민을 실망시키고 가슴아프게 한 점에 대해 사과한다”며 “진심 어린 겸손한 자세로 비판을 수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송환법 추진을 중단했으며, 다시 추진할 시간표는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의 사과성명은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송환법 추진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한 지 하루만에 나왔다. 홍콩 정부 소식통은 송환법이 다시 추진되기는 어려워 ‘자연사’(natural death)할 것이라고 전했다.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뉴시스

시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은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검은 옷을 입고 “우리 애들을 쏘지마라” “학생들은 폭도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삼미 리(35)씨는 “경찰이 젊은이들과 취재 기자들에게까지 그렇게 폭력적이고 무례하게 대해야 했느냐”며 “대의명분을 위해 길거리로 나온 젊은이들의 헌신에 감동했다. 나도 거리로 나가지 않을 변명꺼리가 없다”고 말했다.

캐리람 장관의 사과성명에 대해 트로이 로(24)는 “그가 왜 지금 사과하는지 모르겠다. 정말 사과하고 싶었다면 어제 했어야 했다. 즉각 사퇴하라”고 말했다. 람 장관은 송환법 강행처리 뿐아니라 지난 12일 시위대에 최루탄과 물대포 등을 동원한 강경진압으로 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종교 단체들도 시위에 가세했다. 홍콩의 조셉 하치싱 보좌주교는 신도들에게 “정부 당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경찰의 자제를 요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가야 한다”며 “양심과 평화가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시민들은 찌는 듯한 더위에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도로를 점거하고 있던 시위대는 일제히 갈라져 구급차 길을 내준뒤 다시 모이곤 했다. 지난 12일 강경진압으로 비난을 샀던 경찰은 이날 최소한의 질서유지만 하며 시위대와 거리를 뒀다.

시위를 주도한 ‘시민인권전선’의 지미 샴 의장은 “캐리 람 장관이 성명에서 톤을 부드럽게 바꿨지만 아직 홍콩 시민들의 요구에 답하지 않았다”며 “송환법을 완전 폐기하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시위의 수위를 높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월요일(17일)로 예고한 다양한 파업과 보이콧에 더 많은 시민들이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