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증거인멸 범죄에 120명이 훌쩍 넘는 삼성 임직원이 연루된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입사 4년차 대리부터 계열사 사장까지 통째로 증거인멸에 동원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 사장은 지난 11일 검찰 조사에서 증거인멸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일보가 지난 12일 구속 기소된 김모 사업지원 TF 부사장과 박모 삼성전자 인사팀 부사장 등 삼성 임직원의 공소장을 분석한 결과 증거인멸 혐의에 120명 이상의 임직원이 연루된 것으로 파악됐다. 김 부사장과 박 부사장,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 등 삼성 수뇌부는 지난해 5월 5일 삼성 서초사옥 회의실에서 검찰의 분식회계 수사를 앞두고 대책회의를 개최했다. 이들은 수사에서 분식회계 혐의 등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사업지원 TF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관련 자료에 대한 증거인멸을 결정했다. 사업지원 TF는 그룹 ‘콘트롤 타워’로, 2017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해체된 미래전략실 업무를 물려받은 조직이다.
회의 직후 삼성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즉각 삼성바이오와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에 증거인멸 지시가 하달됐다. 김 부사장은 보안선진화 TF를 지휘 감독하고 있는 박 부사장에게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니 (IT 전문 인력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보안선진화 TF는 그룹 보안 업무를 총괄하는 곳으로 삼성SDS 파견 인력 등으로 구성돼 있다. 사업지원 TF 소속 및 보안선진화 TF 소속 임직원 10여명은 삼성바이오로 출장을 가 지난해 8월 김태한 대표 등 임직원 30여명의 컴퓨터와 휴대전화 속 자료들을 모두 합쳐 8차례에 걸쳐 영구 삭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삼성에피스에서도 같은 기간 같은 방식으로 모두 합쳐 12차례에 걸쳐 고한승 대표를 포함한 임직원 30여명의 자료를 영구 삭제했다.
삼성바이오와 삼성에피스는 자체적으로 증거인멸을 실행하기도 했다. 삼성바이오는 지난해 5월초 소속 임직원 25명이 사용하고 있던 컴퓨터를 포맷하거나 하드디스크를 교체하는 방법으로 자료를 삭제했다. 2016년 입사한 삼성바이오 소속 대리급 직원 안모씨는 김태한 대표 등 ‘윗선’의 지시를 받고 노트북 20여대와 회사 공용서버를 공장 바닥 아래 숨겼다가 지난달 24일 구속 기소됐다. 삼성에피스도 같은 기간 임직원들이 사용하던 노트북 30여대를 교체한 뒤 창고에 숨겨뒀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삼성은 100명이 넘는 임직원을 증거인멸 범죄에 가담 시킨 것”이라며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삼성 직원들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길 수도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입사 4년차를 범죄에 동원하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며 “‘꿈의 직장’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삼성도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는 분위기다. 정 사장은 “증거인멸 계획은 사전에 몰랐지만 결과적으로 이 같은 일이 벌어진 데 대해 굉장히 죄송하다”는 취지로 검찰에 진술했다고 한다. 삼성바이오·삼성에피스도 지난 14일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송구하다”고 범죄 사실을 인정했다.
‘삼성바이오 증거인멸·분식회계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송경호)는 증거인멸 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됐다는 판단 하에 다음주부터 ‘본안’인 분식회계 수사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정 사장에 대해서는 추가 소환 조사가 필요하지만 분식회계 수사 상황을 감안해 시급하게 진행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