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진 농부가 사후에야 재심을 통해 44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광주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김태호)는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기소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은 A씨(1929년생·1992년 사망 당시 63세)에 대한 재심에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16일 밝혔다.
농민이던 A씨는 1975년 9월 21일 오후 10시30분쯤 전북 옥구면 한 저수지 양수장 뚝 앞에서 양수장 기사 등 5명에게 “논에 나락이 다 죽어도 박정희나 농림부 장관이 한 게 무엇이냐. 박정희가 잘한 게 뭐 있느냐. 박 정권은 무너져야 한다”고 말한 사실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1976년 2월 20일 전주지법 군산지원에서 유신헌법 제53조에 근거해 발령된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징역 3년 및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 광주고법은 같은 해 6월 16일 항소심에서 ‘원심의 형이 과중하다’는 이유로 원심 판결을 깨고 A씨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1975년 5월 제정된 긴급조치 제9호는 유신헌법을 부정·반대·왜곡·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하는 조치로, 위반 시 1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13년 3월 긴급조치 1·2·9호에 대해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2017년 10월 26일 과거사 반성 차원에서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했다. 광주고법은 “재심 사유가 있다”며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재심 재판부는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해 공소가 제기된 사건”이라며 “A씨에 대한 공소사실은 형사소송법이 정한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않는 때’에 해당한 만큼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백승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