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더라도 충분히 박수받을 만했다. 이제 막 소년티를 벗은 선수들의 도전은 충분히 위대했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이 우승 문턱에서 고개를 숙였다. 정정용호는 16일 폴란드 우치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폴란드 월드컵 결승전에서 우크라이나에 1대 3으로 역전패했다.
한국의 결승진출은 ‘언더독’의 반란으로 불린다. 이번 대회 개막 직전 유럽의 주요 베팅업체들은 우승 후보 1순위로 프랑스를 꼽았다. 그들의 예상 순위에서 2위와 3위는 한국과 같이 24강 조별리그에서 F조에 속했던 아르헨티나와 포르투갈을 차지했다. 한국의 우승 가능성은 14위. 그때만 해도 “우승을 차지하겠다”는 선수들의 각오는 대회를 앞두고 볼 수 있는 흔한 자신감의 표현 정도로 받아 들여졌다.
하지만 정정용호는 모두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비웃었다. 우승 후보로 분류됐던 3팀은 16강 문턱조차 넘지 못했고, 한국은 역사상 최초로 FIFA 주관대회 결승까지 올랐다. 6·25동란 휴전 1년 만인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 처음 세계 축구계에 얼굴을 내민 한국은 1983년 멕시코 U-20 월드컵과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을 통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번 준우승은 그때 선배들의 아성을 넘을 수 있는 대업으로 평가된다.
그야말로 극적인 대회 일정이었다.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유효슛 1개로 무기력하게 물러나자 16강 진출마저 불투명해졌다. 첫 경기 패배는 오히려 약이 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잡고 분위기를 바꾼 한국은 비겨도 탈락할 뻔했던 아르헨티나전을 승리로 장식하며 조 2위로 당당히 토너먼트에 안착했다.
2년 가까이 틈틈이 호흡을 맞춘 선수들은 위기 때 더욱 강했다. 언제 만나도 껄끄러운 일본을 상대로 전반 숱한 위기를 넘긴 뒤 후반 38분 오세훈의 결승골로 신승을 거뒀다. 상대의 힘을 빼놓은 뒤 막판에 승부를 보겠다는 작전이 주효했다.
세네갈과의 8강전은 명승부였다. 1-2로 뒤지던 후반 추가시간 이지솔의 헤더로 기사회생했지만, 이번엔 3-2로 앞선 연장 종료 직전 아마두 시스에게 동점골을 헌납했다. 운명의 페널티킥에서는 초반 두 차례 실축에도 골키퍼 이광연의 선방으로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후 정 감독의 탁월한 지도력과 유연한 전술 대처 아래 남미 챔피언 에콰도르까지 넘었고, 결승까지 와 준우승을 차지했다. 어린 선수들의 투지와 정 감독의 다양한 전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원한 스태프의 헌신이 이뤄낸 성과다.
정 감독은 패배에도 기죽지 않았다. “우리 선수들이 이번 경기로 한 단계, 두 단계 더 발전된 모습을 갖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자신들이 맡은 역할을 충분히 운동장에서 펼쳐 보였다. 그동안 우리 선수들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