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일 뿐이다”
신안 앞바다 ‘해저유물매장지역’에서 도굴한 유물을 30년 넘게 숨겨 온 6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 피의자가 보관한 유물은 중국 송·원나라 시대 접시와 청자 등 무려 57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전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매장문화재보호및조사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A씨(63)를 붙잡아 검찰에 송치했다고 1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전남 신안군 방축리 도덕도 앞 신안해저유물매장지역에서 도굴된 유물을 경기도 자택과 친척집 등에 지난 1983년부터 숨겨 온 혐의를 받고 있다.
A씨가 몰래 보관해 온 유물은 1975년 처음 발견된 신안선에서 출토된 것으로 확인됐다.
신안선이 발견된 장소는 발굴작업에 군부대가 투입될 정도로 수심이 깊고 물살이 빠른 곳으로, 정부 역시 1976~1984년간 총 11차례에 걸쳐 발굴작업을 진행한 지역이다.
발굴에 오랜 기간이 소요됐던 만큼 도굴꾼들은 정부의 발굴작업이 없는 틈을 노려 야간에 잠수부를 투입했다.
당시 지인이 도굴사범으로 구속되자 A씨는 문화재를 바로 팔아치우지 않고 오랫동안 숨겨 온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최근 경제적 문제로 생활이 어려워지자 A씨는 결국 이들 유물을 팔기로 결심했다.
그는 공항 검색이 까다로웠던 중국 대신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일본에서 중국산 도자기 거래가 여전히 활발하기 때문이었다.
지난해부터는 일본으로 건너가 수차례 브로커들을 만났다. 판매는 거래 금액이 합의되지 않아 성공하지 못했다. A씨는 당시 브로커에게 “이 유물은 신안선에서 발굴된 진품이 맞다”고 설명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과 문화재청의 공조수사에 결국 덜미를 잡힌 그는 “골동품 수집을 취미로 하던 어머니의 유품을 물려받은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찰은 주변 인물들의 진술과 증거 등에 따라 그가 은닉한 유물이 신안선에서 도굴된 것으로 보고 있다.
문화재청 역시 A씨에게서 압수한 ‘청자구름·용무늬 큰접시’가 신안선에서 출토된 것과 동일하다며 그가 숨겨 온 유물이 모두 신안해저유물이라는 감정을 내놨다.
A씨로부터 압수한 유물은 보존상태가 좋고 학술적·문화재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재적 가치가 가장 높은 ‘흑유잔’의 경우 중국 송나라 시절 복건성 건요(建窯·중국 푸젠성 등지에 있던 가마터)에서 생산된 것으로, 검은 유약에 토끼털 모양이 남아 ‘토호잔’이라고도 불린다.
압수된 유물들은 국공립 박물관 등에 보관될 예정이다.
이성선 대전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장은 “도굴된 문화재를 취득해 보관하는 것도 불법”이라며 “신안 해저유물의 유통이 확인됐으니 골동품 거래 시 적극적인 신고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대전=글·사진 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