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이 또다시 역사를 써냈다. 멕시코 대회 이후 36년 만에 나선 U-20 월드컵 4강전에서 ‘한국축구의 미래’라고 불리는 이강인의 환상적인 어시스트로 승리를 거두고 대회 우승에 단 1승을 남겨뒀다.
한국은 12일(한국시간) 폴란드의 아레나 루블린에서 에콰도르와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4강전을 치렀다. 이날 1대 0으로 승리한 한국 축구대표팀은 FIFA 주관 대회 사상 첫 결승 진출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다.
대회가 막판을 향해가는 만큼 이날의 관건은 체력이었다. 한국은 지난 8강 세네갈과의 경기에서 연장 혈투 끝 승부차기까지 치렀다. 에콰도르는 힘겹게 조별리그를 뚫어내고 토너먼트에서 올라오는 동안 대부분 주전 멤버들만 기용했다. 결국 정신력과 심리상태가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한국은 경기 초반부터 자신있게 에콰도르 진영을 몰아쳤다. 경기 시작 35초 만에 최준이 슛을 시도했고 전반 6분 두 개의 코너킥을 얻어냈다. 골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이강인도 전반 13분과 21분 강력한 왼발 슈팅을 시도했다. 그간 에콰도르는 단 하나의 슈팅도 없이 파울만 5개 범하며 한국의 공격을 막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전반 22분부터 에콰도르도 슈팅을 기록하며 본격적인 공방전이 시작됐다. 캄파냐의 프리킥을 받아 포로조가 헤딩을 시도했지만 다행히 이광연의 정면으로 약하게 굴러갔다. 전반 24분에는 치푸엔테스의 슈팅이 한국 수비의 발에 맞고 굴절되며 골문을 비껴갔다. 전반 38분에는 이날 가장 아찔했던 장면이 나왔다. 멋진 발놀림으로 공을 잡아낸 캄파냐가 한국 골문을 향해 쇄도하다 슈팅을 시도했다. 공은 한국 수비진의 몸에 맞은 뒤 크로스바를 맞히고 튀어나왔다.
첫 골이 터진 것은 전반 39분이었다. 이강인은 프리킥 직전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시늉을 하며 상대 수비를 속인 뒤 에콰도르 수비진 사이로 최준에게 날카로운 프리킥을 연결했다. 윙어 출신이지만 이날은 윙백으로 나선 최준이 페널티 지역 좌측에서 에콰도르 골문으로 쇄도해 이강인이 차낸 공을 받자마자 오른발 감아차기 슛으로 골을 만들어냈다. 이미 설계된 듯한 완벽한 호흡이 돋보였다.
선취점을 빼앗긴 에콰도르도 공격을 이어갔다. 퀸테로가 슈팅을 시도해 한국 선수에게 맞고 코너킥으로 이어졌지만 오프사이드가 선언돼 한국에 공격권이 넘어왔다. 전반 종료 직전 플라타가 헤딩슛을 시도했지만 다시 이광연의 정면을 향했다. 결국 한국이 1-0으로 앞선 채 전반이 종료됐다.
에콰도르는 후반 다급한 모습이었다. 후반 1분 알바라도가 수비진이 붙지 않은 상황에서 슈팅을 시도했지만 골문을 넘어갔다. 이후로도 에콰도르가 공격을 지속했지만 이광연이 몸을 날려야 할 만큼 효과적인 슈팅은 하지 못했다. 에콰도르는 오히려 후반 11분(캄파냐)과 13분(플라타) 연이어 옐로카드를 받았다.
후반 26분 이광연이 이날 최고의 선방을 보여줬다. 팔라시오스가 차낸 바깥쪽으로 휘어나가는 공이 한국의 골문으로 향했지만 이광연이 재빨리 우측으로 점프해 팔을 쭉 뻗어 공을 쳐 냈다. 이미 숱한 위기 상황에서 팀을 구해낸 이광연의 감각을 확인할 수 있던 장면이었다.
한국은 후반 28분 이날 종횡무진한 이강인을 빼고 박태준을 투입했다. 이강인이 빠지자마자 조영욱이 엄청난 속도로 드리블한 뒤 강력한 슈팅을 시도했다. 에콰도르 골키퍼 라미레즈가 힘겹게 막아내며 득점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이후로도 양팀은 공격을 주고받았지만 에콰도르가 경기 종료가 다가올수록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 반면 유리한 고지에 선 한국 선수들의 표정은 한층 여유로웠다.
후반 27분 부상당한 고재현 대신 교체 투입된 엄원상이 한 번 더 에콰도르의 골문을 뒤흔들며 쐐기골이 기록되는 듯했지만 오프사이드가 선언됐다. 비디오 판독까지 거쳤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직후 후반 42분 이광연이 알바라도의 헤딩슛을 막아내며 에콰도르의 추격 의지를 꺾었다. 후반 44분에는 캄파냐가 골문 바로 앞에서 시푸엔테스의 공을 받아 왼발 슛을 시도했지만 다행히 크게 빗나갔다. 이를 본 캄파냐는 패배를 직감한 듯 얼굴을 감싸 쥐었다.
에콰도르는 막판 골키퍼까지 투입해 득점을 노렸지만 오프사이드 판정만 받았을 뿐 동점을 만들지 못했다. 여기에 후반 추가시간 캄파냐의 헤딩을 이광연이 동물적인 감각으로 막아냈다.
결국 그대로 경기가 끝나며 한국의 결승 진출이 결정됐다. 한국은 16일 오전 1시 우크라이나와 결승을 치른다.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