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발생한 제주 전 남편 살해사건에 대한 경찰의 초동수사가 적절했느냐를 두고 비판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경찰의 미흡한 대처 탓에 결과적으로 가해자 고유정이 피해자인 전 남편의 시신을 유기할 시간을 벌었다는 것이다.
11일 제주 동부경찰서 발표를 종합해보면, 피해자 유가족이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한 시점은 지난달 27일이었다. 고유정이 펜션을 나간 것은 같은 날 오전 11시30분, 시신 일부를 유기한 것은 이튿날인 28일 밤 9시30분부터 37분 사이였다. 나머지 시신은 지난달 29~31일 경기 김포 소재 가족 명의의 아파트에서 처리했다. 따라서 경찰이 펜션에 대한 현장감식을 즉각 실시하고 고유정의 뒤를 쫓았다면 시신유기는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경찰이 감식을 실시한 건 신고 다음날인 28일이었다. 경찰은 “펜션 업주가 늦춰달라고 요청해 하루를 기다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경찰은 CCTV도 유족의 도움으로 뒤늦게 확보했다. 경찰은 신고를 접수한 날 펜션에 있는 CCTV가 모형이라는 사실만 확인하고 돌아갔다. 이에 피해자의 남동생이 사흘 뒤 펜션에서 가까운 주택 CCTV 영상을 찾아 경찰에 건넸다. 이 영상에는 고유정이 지난달 25일 피해자와 함께 펜션에 들어갔다가 이틀 뒤 홀로 빠져나오는 장면이 담겼다.
피해자 차량의 블랙박스 역시 논란거리다. 피해자의 차량은 숨진 펜션 주차장에 지난달 25~27일 세워져 있었다. 경찰은 유가족의 요구에 28일이 돼서야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했다. 이 영상에는 고유정과 숨진 전 남편이 함께 펜션에 들어가는 모습이 담겼다. 이에 대해 경찰은 “범죄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살인사건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현장보존도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은 지난 1일 고유정을 긴급체포한 뒤 5일에야 혈흔을 채취하기 위해 펜션을 찾았다. 하지만 펜션 주인은 이미 표백제 등으로 내부 청소를 마친 상태였다. 범행현장이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비판에 대해 현장 상황을 무시한 지적이라는 반박도 나왔다. 서울 수서경찰서 강력계 팀장이었던 백기종씨는 “현장 경험상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주장했다.
백 전 팀장은 11일 YTN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범행은 25일 저녁에 이뤄졌다. 고유정은 범행을 저지르고 증거 인멸을 한 뒤 28일 밤에 빠져나갔다”면서 “반면 전 남편 유가족은 27일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은 신고를 받고 바로 수색했다. 통신기지국을 수사해보니 범행 장소인 펜션이 나타났다. 그런데 펜션은 무인 시스템이었고 깨끗하게 청소가 된 상태였다. 부인의 행적이 묘연하다는 사실을 인지한 경찰이 강력사건으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간상 통신기지국 수사나 아이를 조사하기 위해 아동 전문 상담가를 투입한 것도 쉽지 않았다. 절대 수사가 잘못됐다고 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박준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