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일인 2009년 8월 18일부터 매년 기일마다 고 이희호 여사를 찾았다. 자세를 낮춰 예를 갖추면서 얼굴을 마주하고 두 손을 맞잡았다. 집권 2년차로 들어서면서 국정에 역량을 집중했던 지난해 기일은 근조화환을 보내 위로를 대신했다. 문 대통령에게 이 여사는 자신보다 한걸음 앞서 한국의 민주화를 지탱했던 ‘거목’이자 정치적 동반자였다. 이 여사는 지난 10일 오후 11시37분 향년 97세로 별세했다.
10년 전… 문 대통령은 2009년 8월 18일 김 전 대통령의 부고를 들었다. 장례식장이 마련된 서울 연희동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당시 문 대통령은 정치적 입지를 부각하지 않고 참여정부 시절 핵심 인사로 대중에 알려져 있었다. 직함은 지금의 대통령이 아닌 청와대 전 비서실장, 전 민정수석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 여사와 유족을 만나 두 손을 맞잡고 위로했다. 이 여사는 슬픈 얼굴로 문 대통령과 악수했다.
9년 전… 김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주의의 ‘거목’이었다. 그를 정치적 스승으로 여긴 정치인들은 지금 거물급으로 성장했고, 정부와 각 정당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있다. 성과와 평판이 어떻든 모두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이다. 사진은 문 대통령이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했던 2010년 8월 18일 김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때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과 악수하는 모습이다.
8년 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오랜 친구면서 정치적 동반자였다.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뒤 부인 권양숙 여사의 곁을 가장 오래 지킨 사람은 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2011년 8월 18일 김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때 권 여사와 함께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다. 사진은 눈물을 닦는 권 여사를 뒤따르는 문 대통령.
7년 전… 왼쪽부터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박준영 전 국민의당 의원, 문 대통령,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이들은 2012년 8월 18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 전 대통령 서거 3주기 추도식에서 같은 당적(민주당)을 갖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6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집권 첫 해인 2013년 8월 18일 문 대통령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당시 무소속 의원이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함께 김 전 대통령 서거 4주기 묘역에 분향했다. 문 대통령과 안 전 대표는 앞서 2012년 12월 제18대 대통령선거 예비후보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경쟁했다. 문 대통령이 최종 후보로 나섰지만, 선거는 박 전 대통령의 승리로 끝났다.
5년 전… 문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 기일에만 이 여사를 찾은 것은 아니었다. 평소에는 물론 정치적으로 중요한 순간마다 이 여사를 만나 의견을 듣고 선택에 반영했다. 이 여사는 이런 문 대통령을 문전박대한 적이 없었다. 사진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 5주기 한 달여 뒤인 2014년 9월 23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환담을 나누는 문 대통령과 이 여사.
4년 전… 이 여사는 문 대통령이 찾아올 때마다 두 손을 맞잡고 환대했다. 이 여사는 90대 고령으로 휠체어에 의존할 때가 많았지만, 때로는 두 발을 딛고 일어나 문 대통령과 악수하며 인사했다. 사진은 김 전 대통령 서거 6주기인 2015년 8월 18일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문 대통령이 서울 마포구 동교동 이 여사 자택에 예방한 모습이다. 이 여사와 김 전 대통령은 생전 이 집에서 거주했다.
3년 전…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전운’이 조금씩 몰려들던 때였다. ‘친박계’ 핵심인 이정현·김재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그해 8월 18일 김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했고, 문 대통령과 만나 악수했다. 그리고 두 달 뒤 전국은 촛불로 뒤덮였다. 김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도식은 문 대통령과 친박계가 웃으면서 사진을 촬영한 사실상 마지막 순간이 됐다.
2년 전… 박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7개월여 앞당겨 치러진 제19대 대선에서 문 대통령은 승리했다. 그렇게 찾아온 김 전 대통령 서거 8주기는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하고 맞은 첫 기일이었다. 문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했고, 이 여사는 이런 문 대통령에게 평소보다 자세를 낮추고 예우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그동안과 다르지 않게 이 여사 앞에서 자세를 낮추고 앉아 악수했다.
1년 전… 문 대통령은 집권 2년차인 지난해부터 노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적 동반자의 추모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의 기일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대통령 명의의 조화를 보내 이 여사를 위로했다. ‘의전 서열 2위’ 문희상 국회의장을 포함한 정계 인사들은 지난해 8월 18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 전 대통령의 서거 9주기 추도식에 변함없이 대거 참석했다. 이 여사가 생전에 참석한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추도식이 됐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