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오후 11시37분 별세했다. 향년 97세.
이 여사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노환으로 치료를 받았으나 최근 병세가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분향소는 같은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장지는 서울 국립현충원이다.
이 여사를 가까이에서 모셔온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가족은 (이 여사를) 사회장으로 모실 것을 고려하며 장례위원장으로는 권노갑 평화당 상임고문,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을 모시려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5당 대표들을 사회장 장례위 고문으로, 현역 의원은 장례위원으로 위촉하겠다는 뜻도 전했다.
이 여사는 영부인이자 저명한 사회운동가였다. 그는 이화여전,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떠나 사회학으로 석사 학위를 땄다. 국내에서는 여성문제연구회 창립을 주도했고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YWCA) 연합회에서 활동하며 여성 인권을 외쳤다.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의 연이 이어진 건 1962년 이 여사가 YWCA 총무로 있을 때였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5수 끝에 국회의원이 됐지만 5·16 쿠데타로 정치 낭인이 된 상태였다. 국내 정치에 대해 토론하며 뜻을 함께한 둘은 5월 결혼했다. 이때부터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동반자이자 정치적 동지가 됐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정권의 탄압이 이어지던 시기, 이 여사는 항상 남편과 함께했다. 결혼식을 올리고 열흘 만에 이 여사는 남편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는 것을 봤다. 76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이후 반복된 김 전 대통령의 옥살이에 이 여사는 석방 운동과 옥바라지를 했다.
98년 김 전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식 이후 이 여사는 영부인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앞장섰다. 결식아동을 위한 봉사단체 ‘사랑의 친구들’, 저소득층 여성을 돕는 ‘한국여성재단’ 등에서 활동했다. 여성가족부의 모태가 되는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도 출범시켰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대통령 재직 때는 세 아들의 비리 연루로, 퇴임 이후에는 대북송금 사건 수사로 또 한 번 힘든 시기를 겪었다. 2009년 8월에는 남편 김 전 대통령을, 지난 4월에는 첫째 아들 김홍일 전 의원을 먼저 보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에게 쓴 마지막 편지에서 “같이 살면서 나의 잘못됨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늘 너그럽게 모든 것 용서하며 아껴주었습니다.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라고 썼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