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김학의 수사 외압 진술 없다”던 檢… 2013년 경찰청장 등 외압 진술있었다

입력 2019-06-09 18:53
이성한 전 경찰청장


2013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수사에 청와대·경찰 상부가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단(단장 여환섭 청주지검장) 수사가 부실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세민 전 경찰청 수사기획관의 외압 정황 진술을 수사단이 사실상 배제한 것으로 확인되면서다(국민일보 6월 6일자 12면 참조). “경찰 관계자를 모두 조사했는데 외압받은 바 없다고 했다”던 검찰 발표가 사실이 아니었던 셈이다. 수사단이 ‘박근혜 청와대’ 관계자와 당시 경찰 고위급 인사들의 직권남용 혐의에 ‘면죄부’를 주기 위해 이같이 판단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9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 전 기획관은 “2013년 4월 초 이성한 전 경찰청장 취임 직후 김 전 차관 사건 보고를 하러 갔더니 이 전 청장이 내게 ‘남의 가슴 아프게 하면 벌 받는다’고 했다”며 “여기서 ‘남’은 김 전 차관을 얘기한 것”이라고 검찰에 진술했다. 그는 검찰에 “당시 이 전 청장의 이런 표현들이 부담돼 외압이라고 느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검찰은 지난 4일 김학의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경찰 관계자들은 모두 외압을 받은 바 없다고 했다”고 강조했었다.

검찰은 이 전 기획관의 진술을 뒤늦게 인정했다. 지난 5일 “이 전 기획관이 외압을 느꼈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가 말을 바꾼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다만 이 전 기획관은 강신명 당시 사회안전비서관 외에 청와대 인사의 전화를 직접 받은 적은 없었다”며 “내부적으로 (외압을) 받았을 수는 있는데 외부인 청와대에서는 없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기획관이 청와대로부터 ‘직접’ 외압을 받지 않아 그의 진술을 브리핑에서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는 게 검찰 입장이다. 검찰은 경찰 상부의 외압 정황에 대한 이 전 기획관의 언급도 청와대와 관련이 없어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전 기획관은 통화에서 “매일 이 전 청장에게 수사 상황을 직접 보고했다”며 “그는 ‘기획관이 보고하는 게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수사 의지를 꺾어 놨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이 전 청장으로부터 ‘벌’을 받기도 했다. 보고 열흘쯤 뒤인 4월 15일 기획관 부임 4개월여 만에 경찰대 학생 지도부장으로 전보됐다. 이 인사는 당시 수사 무마를 위한 좌천 인사로 평가됐다.

이 전 기획관은 청와대의 외압 정황도 검찰에 진술했다. 김학배 전 경찰청 수사국장이 청와대 전화를 받고 부담을 느꼈던 상황,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이 경찰청에 직접 찾아왔던 사실 등이다. 김 전 국장은 다만 검찰에 “박 전 행정관을 경찰청에서 만나긴 했지만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이 전 청장도 “청와대로부터 연락을 받은 바 없고 이 전 기획관에게 외압을 하지 않았다”고 검찰에 설명했다고 한다. 이 전 기획관은 “검찰이 입맛에 맞는 진술만 취사선택 한 것”이라며 “김 전 국장은 수사 의지가 없었던 사람이고 이 전 청장은 박근혜정부가 임명한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한 검찰 과거사위원회 위원도 “검찰이 외압 여부를 두고 ‘말 장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여환섭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장이 4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검찰청 대회의실에서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뇌물수수 및 성범죄 의혹사건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19.06.04. 뉴시스

검찰이 경찰의 ‘별장 동영상’ 정보 수집을 내사라고 판단한 부분도 논란이다. 검찰은 경찰이 3월 초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내연녀였던 권모씨를 만나 동영상을 직접 봤으며 권씨의 ‘진술서’를 이메일로 받았기 때문에 사실상 내사가 진행됐다고 봤다. 경찰이 김 전 차관이 내정된 3월 13일 이전 청와대에 ‘내사 허위 보고’를 했다고 판단한 근거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서도 이 전 청장 진술을 근거로 삼았다. 이 전 청장은 ‘이 같은 정보 수집은 내사라고 봐야 할 것 같다’는 취지로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측은 권씨를 만난 것은 범죄 정보 수집의 일환이었다고 반발하고 있다. 당시 경찰청 범죄정보과 소속이었던 강일구 총경은 “검찰이 언급한 진술서는 권씨가 변호사와 상의하려 만든 자료였을 뿐 정식 진술서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범죄정보과는 수사 자체를 하지 않는 부서인데 무슨 내사를 했다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검찰 수사에 대한 의구심은 높아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외압 여부에 대해 정반대 진술이 나왔는데 검찰은 외압을 안했다는 쪽 얘기만 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2013년 경찰 수사팀 관계자들은 직권남용 혐의로 이 전 청장을 고소 또는 고발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문동성 구자창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