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펜션 전 남편 살인사건’의 피해자로 추정되는 30대 남성의 뼛조각 일부가 인천의 한 재활용업체에서 발견됐다.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고유정(36)씨를 지난 1일 긴급체포한 뒤 수사력 부재와 한계의 논란에 휩싸였던 제주경찰의 9일 만의 성과다.
다만 이 뼛조각이 피해자의 DNA와 일치하지 않을 시에는 경찰의 ‘뒷북 수사’에 대한 비난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제주동부경찰서는 지난 5일 인천시 서구 한 재활용업체에서 고유정(36)씨의 전 남편 A씨(36)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 일부를 수습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 의뢰했다고 9일 밝혔다.
경찰은 고씨가 범행 후인 지난달 28일 전남 완도행 여객선으로 제주를 빠져나오면서 이 항로 해상과 경기도 김포에 있는 가족 소유 주거지 등에 시신을 유기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여왔다.
경찰은 고씨가 지난달 31일 가족이 거주하고 있는 경기도 김포의 한 아파트 내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시신 일부를 담은 것으로 추정되는 쓰레기 종량제봉투를 버리는 모습을 CCTV 영상을 통해 확인했다. 이어 쓰레기의 운반경로를 추적해 인천시 서구 한 재활용업체에서 피해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3㎝ 미만의 뼛조각을 다량 발견했다. 수습된 전체 뼛조각 양은 라면박스 3분의 1정도로 알려졌다.
하지만 뼛조각의 훼손 정도가 심하고 500~600도 이상의 고열에서 소각됨에 따라 DNA 훼손 우려로 정확한 신원 확인에는 어려움이 예상된다.
특히 수거한 뼛조각에서 신원 확인이 이뤄지지 않을 시 수사는 다시 장기화 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고씨의 살해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직접적인 증거인 피해자의 시신을 다시 찾아야하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와 함께 피해자가 살해된 제주시 펜션의 하수구 및 정화조에서도 사람의 머리카락 58수를 발견했다. 경찰은 해당 머리카락에 대해서도 국과수에 감정 의뢰했다.
경찰은 이날 고씨가 범행 사흘 전인 지난달 22일 오후 11시쯤 제주시내 한 마트에서 칼과 표백제, 베이킹파우더, 고무장갑, 세제, 청소용 솔, 먼지 제거 테이프 등을 구매하는 모습이 담긴 CCTV도 공개했다.
경찰은 고씨가 범행 전부터 살해와 시신 훼손, 흔적을 지우기 위한 세정작업까지 준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고씨는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흉기와 청소도구 등을 미리 준비하는 등 완전 범죄를 꿈꾼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고씨를 긴급체포한 후 9일째 수사를 이어가고 있는 경찰은 뼛조각을 발견하기 전날까지 수사력 부재와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는 지적을 받았다.
살해된 전 남편 A씨의 지역 주민 60여명은 지난 8일 제주동부경찰서를 항의 방문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갖고 “경찰의 수사초기 현장보존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유가족이 CCTV를 직접 찾아내는 등 미적미적한 초동수사의 문제점이 많다”며 경찰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피해자 시신의 행방은 찾지도 못할 뿐 아니라 범죄수사의 기본인 ‘현장보전’을 하지 않아 증거물이 훼손되고, 범행이 이뤄진 펜션 인근의 CCTV 영상은 피해자 유족이 찾아 경찰에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앞서 경찰은 지난달 27일 A씨의 남동생에게서 ‘전 부인을 만나러 간 형이 연락 두절됐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곧바로 피해자의 행적 파악에 나섰다. 경찰은 A씨가 지난달 25일 오후 4시20분쯤 전 부인 고씨와 함께 조천읍의 한 펜션에 들어간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고씨의 수상한 모습이 찍힌 인근 단독주택의 CCTV는 확인하지 못한 채 모형 CCTV만 발견하고 돌아섰다. 이로 인해 고씨는 살해한 남편의 시신을 담은 것으로 추정되는 가방 두 개를 차량 트렁크에 싣고 28일 전남 완도행 배편으로 제주를 빠져나왔다.
당시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더라면 경찰은 고씨가 유기하려던 시신을 찾아 범행전모를 사전에 밝힐 수 있었다. 결국 경찰의 초동수사에 의문을 가진 A씨의 남동생이 실종신고 나흘 뒤인 지난달 31일 펜션 인근 단독주택의 CCTV 영상을 확보해 경찰에 넘기면서 다음날 충북 청주에서 고씨를 긴급체포했다.
경찰은 또 범행이 이뤄진 펜션의 주인이 강하게 반발한다는 이유로 현장검증도 하지 못하고, 범죄현장도 보존하지 않은 탓에 펜션 내 혈흔 등 증거물을 제대로 수집하지 못했다. 펜션 주인이 보존되지 않은 범죄현장에 남겨진 혈흔 등을 표백제로 닦아내며 범행 흔적이 대부분 지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균 기자 ykk22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