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10일 광복군을 앞세워 일제와 전면전을 선포했습니다.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습니다. (중략)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6일 제64회 현충일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광복군에서 국군의 뿌리를 찾았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추축국과 맞서 싸운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야당은 거세게 반발했다.
김원봉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평가가 공존한다. 김원봉은 1919년 의열단을 결성해 일제를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인 독립운동가다. 동시에 북한에서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고 6·25 이후에는 김일성으로부터 훈장을 받은 월북 인사이기도 하다. 김원봉을 언급한 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를 놓고 7일 여야 5당에서 제각각의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애국의 통합적 관점”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구두 논평을 통해 “문 대통령이 김원봉 선생의 월북 전후 행적을 구분해 공은 공대로 인정해줄 수 있는, 애국에 대한 통합적 관점을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봉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문 대통령을 ‘빨갱이’로 공격한 차명진 전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해서는 “이념 갈라치기로 활용해 대통령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비난을 퍼부은 차 전 의원의 입장은 한국당의 공식 입장인가”라고 반문한 뒤 “그렇지 않다면 면죄부식 징계로 막말 경쟁을 부추기지 말고 이번 기회에 차 전 의원을 당에서 영구히 축출하기를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 “김원봉, 국군 많이 죽인 대가로 김일성 훈장”
반면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대통령이 현충일에 북한 정권 수립의 공훈자, 6·25 전쟁 중 대한민국 국군을 많이 죽인 대가로 김일성 최고 훈장을 받은 김원봉을 두고 ‘국군의 뿌리’라고 했다”며 “도대체 대통령이 의도한 바가 무엇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대통령의 발언은 대한민국 정체성 파괴 역사 덧칠하기 작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며 “국민 분열, 갈등유발이 도를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바른미래당 “추념사 부적절, 그래도 대통령에 ‘빨갱이’라니…”
바른미래당은 이종철 대변인 명의의 논평에서 김원봉을 ‘한국전쟁 가해자에 버금가는 자’로 규정하고 한국전쟁 전몰군경 유족 앞에서 언급하기에 부적절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 대변인은 “6·25전쟁에서 죽어간 넋들의 수많은 무덤을 앞에 놓고 가해자에 버금가는 이를 역사까지 설명하며 추켜세우고 칭송할 수 있는 것인지 국민은 이해할 수가 없다”며 “호국영령에 대한 모독이고 국민에 대한 도발에 가깝다”고 밝혔다.
김원봉에 대해서는 한국당과 유사한 관점을 앞세웠지만, 이를 이유로 문 대통령을 ‘빨갱이’로 비하한 차 전 의원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 대변인은 별도의 논평에서 “문 대통령의 추념사는 국민에게 큰 실망을 줬지만, 차 전 의원의 ‘빨갱이’ ‘탄핵’ 선동은 더 큰 반감과 불쾌감만 낳았다“며 “문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던 사람도 차 전 의원의 말을 들으면 ‘더 모자란 사람’이라고 혀를 찬다”고 평가했다.
민주평화당 “역사 영역, 정쟁 바람직하지 않아”
민주평화당은 김정현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내고 “김원봉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은 바람직하지 않다. 중지하는 것이 옳다. 김원봉을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오게 되면 국론만 분열시킬 뿐”이라며 “역사의 영역에서 의열단장으로서 독립운동의 선봉에 섰던 김원봉과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했고 6·25 때 공로로 훈장을 받은 친북인사 김원봉과 같은 인물이지만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상을 지칭하지 않았지만, 김원봉을 언급한 문 대통령의 추념사와 이후에 불거진 보수정당의 논쟁을 모두 지적한 논평으로 해석된다. 김 대변인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그대로 보여주는 파란만장했던 김원봉의 삶을 오늘의 좁은 정파적 시각으로 해석할 수 없을 것”이라며 “역사의 공과는 있는 그대로 평가하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의당 “추념사 비판, 친일파 자백하는 꼴”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국회 정론관 브리핑에서 민주당보다 더 강경한 표현으로 문 대통령 추념사에 힘을 실었다. 그는 “항일 무장투쟁을 주도했던 약산 선생의 활약은 익히 알려져 더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라며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 월북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적을 모조리 폄훼당하고 비하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라고 밝혔다.
최 대변인은 “(김원봉은) 노덕술을 위시한 친일세력의 심한 모욕과 핍박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월북했다. 광복 후 행보에 비판의 여지가 있다면 그것대로 평가하면 되는 일”이라며 “한국당 등의 반발은 노덕술류 친일파의 행동이 정당했다는 항변이며 자신의 뿌리가 친일파에 있다는 자백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노덕술은 일제강점기 ‘고문 경찰’로 악명을 떨친 인물이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