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구속수감돼 신상 공개가 결정된 고유정씨는 언론에 노출될 때 고개를 숙여 머리카락을 늘어뜨렸다. 얼굴은 사실상 노출되지 않았다. 피의자가 스스로 노출의 범위를 결정할 수 있는 신상 공개를 놓고 여론은 무용론을 제기하고 있다.
고씨는 6일 제주 동부경찰서 1층 진술녹화실에서 조사를 마치고 오후 6시40분쯤 유치장으로 입감됐다. 이 과정에서 언론사 카메라 앞을 지나가게 됐다. 제주지방경찰청 신상공개위원회는 고씨에 대한 신상 공개를 결정하면서 제주 동부서 내부를 이동하는 동안 모자·마스크 착용을 허용하지 않았다.
앞서 고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언론에 노출될 때마다 모자를 눌러 쓰고 외투로 상체를 가렸다. 범행 동기, 계획 여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았다. 신상 공개가 결정된 뒤부터 어깨까지 내려오는 길이의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는 방법으로 얼굴 노출을 차단했다.
언론을 통해 고씨의 유치장 입감 과정을 지켜본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신상공개 결정이 장난인가” “얼굴 아니라 정수리 공개냐” “삭발시켜라” 등등 비난 의견이 쏟아졌다. “피의자 머리카락의 길이에 따라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신상 공개의 빈틈을 놓고 “경찰의 강제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SNS에서는 “범죄를 저지르면 가발부터 사라”라는 냉소 어린 의견도 주목을 끌었다.
경찰 측은 고씨가 범행 동기 등 중요한 진술을 앞두고 있는 만큼 피의자를 자극하지 않도록 강제력을 동원한 얼굴 공개에는 신중한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씨는 지난달 25일 제주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전 남편인 강씨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같은 달 27일 고씨가 전남 완도행 선박을 타고 제주를 빠져나간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 1일 충북 청주 자택에서 고씨를 긴급체포한 뒤 제주 동부서로 압송했다. 제주지법은 지난 4일 고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시신을 바다에 버렸다”는 고씨의 진술을 토대로 해양경찰에 수색 협조를 요청했지만, 강씨의 시신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