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모자→하얀수건’ 순천 강간살해범 수상한 행적

입력 2019-06-06 11:57 수정 2019-06-06 12:02
‘순천 선배 약혼녀 성폭행 살해사건’ 피해자의 사촌여동생이라는 네티즌이 인터넷에 호소글을 올려 파문이 일고 있다. 과거 성폭행을 일삼던 범인이 전자발찌를 차고도 버젓이 돌아다니며 또 다시 끔찍한 성폭행 살인을 저지르는데도 우리 공권력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글에 공감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7일 오전 전남 순천의 한 아파트에서 선배의 약혼녀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를 받는 35살 남성이 CCTV 화면에 포착됐다. 그는 범행 전에는 빨간 모자와 반소매 차림이었고(왼쪽) 범행 후에는 긴소매 차림에 하얀색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경찰 제공. 일부 모자이크

인터넷 아이디 ‘제발도와주세요’를 쓰는 네티즌 A씨는 5일 오후 네이트 판 게시판에 ‘순천 강간살인 사건,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피해여성의 사촌여동생이라는 A씨는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친척 언니를 위해 고민을 하다 글을 쓴다. 여튼 넘으신 큰아빠(피해여성의 부친)와 가족들이 큰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제발 제 글을 한 번만 읽어달라”고 호소했다.

A씨가 거론한 사건은 지난달 27일 오전 5시반쯤 전남 순천의 한 아파트에서 시작됐다.


전남 순천경찰서에 따르면 피의자인 35살 B씨는 직장 선배의 약혼녀인 C씨(43)가 사는 아파트에 찾아가 성폭행을 시도했다. C씨는 40분쯤 뒤인 오전 6시10분쯤 아파트 6층에서 1층 화단으로 떨어졌다. B씨는 9분 뒤 C씨를 안은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6층 아파트로 올라갔다. 경찰은 이때까지 C씨가 살아있다고 보고 있다. 엘리베이터 CCTV에 C씨가 입술을 움직이며 말을 하려는 듯한 장면이 포착돼 있기 때문이었다. B씨는 이후 1시간 정도 뒤에 아파트에서 나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C씨의 사인을 추락사가 아닌 질식사로 판단했다. 경찰은 B씨가 C씨를 강간하려다 실패하자 C씨가 다급한 상황에서 화단으로 뛰어내렸고 B씨가 범행 발각이 두려워 C씨를 다시 집으로 옮긴 뒤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B씨에게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강간 등 살인) 혐의를 적용하고 이번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B씨는 두 차례 성범죄 전력으로 10년을 복역해 지난해 출소했다. C씨를 찾아갔을 때에는 전자발찌를 차고 있었다.

A씨는 이번 사건을 보다 자세히 설명했다. B씨는 선배(C씨의 약혼남)에게 급한 일이 생겼다며 다급하게 초인종을 눌렀고 C씨는 걱정된 마음에 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B씨가 C씨의 목을 잡으며 성폭행을 시도하면서 C씨는 기절했고 B씨가 물을 마시려는 순간 정신이 든 C씨는 베란다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피해 가족들은 C씨가 베란다 창밖으로 뛰어내렸다는 점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겁이 많은 C씨가 문이 아닌 베란다로 도망을 쳤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B씨가 몸집이 작은 C씨를 창밖으로 던졌거나 몸싸움 중에 C씨가 창밖으로 떨어지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B씨는 이후 더 끔찍하고 잔혹하게 행동했다. 머리가 깨지고 얼굴이 찢어져 피를 흘리는 C씨를 다시 들쳐 메고 6층 아파트로 올라갔다. A씨는 “그런 언니를 끌고 와서 성폭행을 하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한다”면서 “그후 옷까지 갈아 입혀 침대에 눕혀놓고 갔다”고 전했다.

B씨는 잡혔지만 범행을 자백하지 않고 있다. 경찰이 들이닥쳐 초인종을 눌러도 문을 열어주지 않고 있다가 경찰이 문을 따고 들어가니 자기 아파트에서 가만히 있다가 잡혔다.

B씨는 2007년 주점 여종업원 성폭행으로 5년을 복역했고 출소 6개월만인 2013년에도 주점 여종업원을 성폭행해 구속됐다. 화학적 거세와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받았지만 출소 7개월 만에 또다시 C씨를 상대로 범행한 것이다.

A씨는 “B씨는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거나 자기가 죽인 건 아니라고 말을 번복하기도 한다”면서 “만취 상태에 성폭행 살인 계획이 없었다면서 왜 언니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서는 모자로 얼굴을 가렸는지 모르겠다”고 썼다.

또 처음 성폭행을 시도하러 엘리베이터를 올라갈 때에는 빨간 모자로 얼굴 반을 가린 채 반소매 차림이었는데 추락한 C씨를 다시 올려놓은 뒤 내려올 때에는 하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긴소매 차림이었다고 했다.

지난달 27일 오전 전남 순천의 한 아파트에서 선배의 약혼녀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를 받는 35살 남성이 CCTV 화면에 포착됐다. 그는 범행 전에는 빨간 모자와 반소매 차림이었고(위) 범행 후에는 긴소매 차림에 하얀색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경찰 제공. 일부 모자이크

A씨는 화학적 거세나 전자발찌로도 재범을 막지 못했다며 실효성 없는 성범죄 대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A씨는 “B씨가 만약 감옥에서 살다 나오면 이전에도 세 번이나 그랬듯이 일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안에 분명 똑같이 일이 생길 것”이라면서 “전자발찌를 차면 안전하다고요? 경찰이 늘 조회하고 지켜보니 안전하다고요? 저희도 그렇게 믿었지만 이렇게 참담하고 끔찍한 죽음을 봤다”고 한탄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가 정말 아이들과 여자들이 살기 안전한 곳인가”라면서 “억울한 죽음을 풀어달라. 제발 더러운 성폭행 살인자가 다시는 이 세상에 발을 딛지 못하게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C씨의 부친 D씨도 지난 4일 딸을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목졸라 죽인 B씨를 사형시켜 달라는 내용의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렸다.

D씨는 “저는 지병이 많은 팔십 노인이고 부인은 30년간 파킨슨병을 앓다 3년전 세상을 떠났다”면서 “우리 딸은 엄마가 살아있을 때 병간호를 도맡아 했고 지병이 많은 절 위해 단 하루도 빠짐없이 병간호와 식사를 책임졌다. 학원영어강사를 10여년째 하면서 착하고 바르게 살던 아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저는 식음을 전폐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죽고 싶습니다”라면서 “대통령님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우리 딸을 다시 살려주시든지 이 파렴치한 살인마를 사형시켜주십시오”라고 간청했다.

청원에는 6일 오전 현재 2만여명이 동참했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