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아동센터에 다닌다고 하면 ‘거기는 못사는 아이들이 다니는 곳 아니냐’고 물어봐요. 그래서 이제는 그냥 공부방이나 학원에 간다고 말해요.”
지역아동센터를 10년 동안 다녔다는 A학생은 이 사실을 친구들에게 한 번도 말해본 적이 없다. 그는 “지역아동센터에 다닌다고 하면 친구들이 저를 가난한 집 아이, 부모가 없는 아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숨겼다”고 털어놓았다.
중학교 3학년 B학생은 지역아동센터에 들어갈 때마다 사방을 두리번거린다고 말했다. 학교 친구나 선생님이 혹시 센터에 들어가는 자신을 볼까봐 걱정이 돼서였다. 그는 “왜 이렇게 눈치를 보면서 지역아동센터를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속상해했다.
언제부터인가 지역아동센터는 ‘못사는 아이들이 다니는 시설’이 됐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신설 당시 지역아동센터는 모든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랬던 것이 2009년부터 지역아동센터 사업안내(지침)에 ‘이용 아동 선정기준’이 신설되면서 지금의 차별과 낙인이 생겨났다. 기준에 따라 저소득층의 아이들에게만 센터 이용 자격을 주면서 빈곤층 복지시설이라는 현재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올해 이용 제한이 없는 ‘다함께 돌봄센터’를 신설했다. 이렇게 되면 일반아동이 다니는 다함께 돌봄센터와 저소득층의 지역아동센터로 이원화된 구조가 생길 수밖에 없다. 차별이 심해질 게 뻔했다.
“친구 데리고 와도 되나요?”
안명희 (사)제주특별자치도지역아동센터연합회 회장은 아이들이 이렇게 물어볼 때마다 난감해진다고 했다. 기준에 부합하는 아이만이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친구를 데려오면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집안 사정을 묻고 “이용할 수 없다”고 통보하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모호한 기준 탓에 곤란함을 겪는 일도 많았다. 안 회장은 엄마와 함께 조부모 집에 살던 아이가 지역아동센터로 찾아오면서 겪은 일을 설명했다. 지역아동센터를 다니고 싶다고 한 그 아이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 조부모의 재산 때문이었다. 아이를 맡기기 위해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이의 엄마는 가정폭력으로 이혼한 아픈 가정사를 털어놓아야 했다.
아이들이 느끼는 차별도 심각했다. 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C학생은 “지역아동센터에 들어갈 때마다 사람들이 센터와 관련해 이상한 소리를 한다. 기분이 좋지 않다”며 “지역아동센터는 저소득층 학생들이 다닌다는 인식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 D학생도 “학교에서 지역아동센터로 갈 때 주변에 우리 학교 학생이나 친구가 있으면 지역아동센터 앞에서 전화를 하거나 게임을 하는 척하다가 주위 사람들이 사라지면 그때 안으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내가 왜 눈치를 봐야 하고 기가 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지역아동센터를 다닌다고 차별받지 않고 자유롭게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지역아동센터에 아이를 보내고 있다는 학부모 노희수씨는 최근 겪은 기분 나쁜 일을 털어놓았다. 노씨는 “아이들이 지역아동센터에 다닌다고 했더니 지인이 ‘거기는 부모 없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다니는 거 아니냐’는 말을 했다”며 “가슴이 아팠다. 아이들이 그런 말을 듣고 다닌다는 것이 속상했다”고 말했다.
지역아동센터 관련 단체인 (사)마을과아이들 외 4개 단체는 이런 일상적인 차별과 낙인을 없애기 위해 5일 지역아동센터 사업안내(지침)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지역아동센터 이용 아동 12명과 센터 운영자 23명이 청구 당사자로 나섰다.
신상은 (사)마을과아이들 이사장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정부는 아동의 인권을 침해하는 ‘이용 아동 선정 기준’을 삭제하고 차별을 강화하는 다함께 돌봄센터를 중지하라”며 “가치 중심과 아동 중심의 아동 정책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라”고 촉구했다.
법무법인 정세의 문희찬 변호사는 “‘아이들이 행복한 나라’를 아동 복지의 비전으로 내세운 정부는 운영자들과 아이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있는지 살펴야 한다”고 촉구했고, 최성진 지역아동센터전국연합회 정책위원장은 “아이들은 그냥 아이들이다. ‘취약계층 아이’라는 말은 없어져야 한다. 어떤 아이도 차별받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강태현 인턴기자, 그래픽=김희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