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현이 中 판다컵에 올린 발, 정말 사과할 일일까

입력 2019-06-06 06:02

판다컵은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매년 5월마다 각국 18세 이하(U-18) 축구대표팀을 초청하는 대회다. 청두시축구협회에서 주최하는 지방자치단체 규모의 대회지만 대표팀이 초청된다. 개최국인 중국 이외에 3개국이 초청돼 4개국 리그전을 벌인다.

2017년 처음 개막해 3년째인 짧은 역사를 가졌다. 한국 축구팬 중 상당수도 존재를 몰랐던 이 이벤트성 대회는 하루아침에 유명세를 탔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퍼진 한 장의 사진이 계기였다.

한국 U-18 축구대표팀은 오는 11월 미얀마에서 열리는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챔피언십 예선을 대비해 올해 판다컵에 출전, 3전 전승으로 우승했다. 상대 골망에 9골을 퍼붓는 동안 단 1실점만 기록했을 정도로 강력했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거졌다. 대표팀 주장 박규현이 우승 트로피에 발을 올린 사진을 찍히면서다.

중국 언론은 이 행동을 비난했다. 사진은 곧 웨이보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고, 중국 언론과 여론의 십자포화가 가해졌다. 한 중국 기자는 트로피에 소변을 보는 액션을 취한 선수도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비난이 계속되자 김정수 한국 U-18 대표팀 감독은 지난달 30일 머물고 있던 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 측이 좋은 대회에 초대했는데, 우리가 불미스러운 행동을 했다. 모두 다 내 잘못”이라며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 중국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경기를 뛰었던 선수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침묵했다. 김 감독은 청두축구협회장을 별도로 찾아가 다시 사과의 뜻을 전했다. 대한축구협회 역시 중국축구협회 측에 이번 일에 대한 사과와 유감을 표하는 공문을 보냈다. 청두축구협회는 사과를 수락하지 않고 한국의 우승컵을 박탈했다. 세리머니의 태도를 이유로 우승자격을 박탈한 사례 역시 세계 축구사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박규현은 4일 국민일보와 서신 인터뷰에서 “트로피에 발을 올려 대회를 모욕하려는 의도는 절대로 없었다”고 말했다. 트로피에 소변을 보는 자세를 취했다는 중국 매체의 주장을 박규현은 부인했다. 그는 “그런 일은 없었다. 과격한 자세를 제재당해 중간에 돌아가는 과정에서 오해를 산 것”이라고 해명했다.

세르히오 라모스(왼쪽)과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오른쪽). 선수 인스타그램 캡처

박규현의 행동을 지적하는 의견은 한국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많았다. 다만 이 틈에도 반론이 있다. 동일한 세리머니를 한 해외 유명 스타들의 SNS 사진을 공개했다. 적어도 박규현의 의도에서만큼은 조롱이 없다는 취지다.

2017-2018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정상에 섰던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의 세르히오 라모스, 루카 모드리치의 사례가 그랬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도 2017년 UEFA 유로파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 같은 포즈를 취했다. 올 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잉글랜드 리버풀의 주장 조던 헨더슨 역시 트로피에 발을 올렸다.

트로피에 발을 올리고 사진을 찍는 행위는 이미 여러 대회에서 행해진 관습이고 정상에 오른 기쁨을 발산하는 세리머니일 뿐, 대회의 권위를 짓밟는 오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트로피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음료를 담아 마시는 사진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렇게 트로피 앞에서 여러 자세로 촬영되는 우승팀 선수의 사진은 축구팬에게 대회를 즐기는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송태화 객원기자